연중 16주 월요일. 미카 6,1-8; 마태 12,38-42
저번 주부터 월요일 새벽미사에는 ‘미사 반주 없는 미사’ 가 거행되고 있습니다. 왜냐? 라고 여쭤보신다면 ‘봉사자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봉사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지 않겠습니다. 사실 모든 책임은 담당자인 제가 져야 하니까요. 사정이 어려운 얘기를 듣고 제가 허락을 했습니다. 물론 이에 따른 작은 원성도 들어옵니다. 하지만 현 사정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도 이런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미사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성당 여건이 되기에 현악 반주단도 2팀이나 되는 성당입니다만 우리 스스로도 물어봐야 합니다. ‘단순하게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맞춰주고, 배경이나 여건이 허락되는 곳이 과연 진정한 신앙인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되어줄까요?’ 감각을 만족시키려고만 들 때 우리는 오히려 가벼운 사람이 되고맙니다. 감각을 채워갈 때마다 내 안에서는 이런 소리를 지릅니다. ‘더..더.. 이것보다 더 달란 말이야’ 하고요.
오늘 말씀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뭔가 눈으로 보아야만 귀로 들려야만 생각 좀 해보겠다는 태도입니다. 물론 하고자 하시면 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만 당신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자랑할 표징이라고는 ‘죽어 매달리신 십자가’ 일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살려놓으셨으니까요. 무엇에서 살리셨습니까? 죄를 죽이고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는 부활로 연결시킨 표징이니까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질 못합니다. 1독서 말씀처럼 말하지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고, 무엇을 가지고 높으신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합니까? .. 수 천 마리 숫양이면.. 만 개의 기름강이면.. 내 맏아들, 이 몸의 소생을 내놓아야 합니까?” 요즘 말로 이거지요.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그러나 우린 압니다. 처음 우리를 내신 그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참다운 봉헌의 정신이 뭔지를 말이지요. 구원은, 영원한 생명은, 돈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부가적인 것에 신경 쓰다가 진짜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