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간 금요일
대다수 교우분이 짧게 생각하시는 경우의 하나가 종교와 자신의 인생과 구분해 놓고 시작하는 경우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지정된 종교국가도 아니구요. 사회도 그렇게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종교란 ‘하나 정도 있으면 괜찮은 부가서비스’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요. 하지만 성경의 인물들 중 제대로 된 사람들은 자기의 삶이 하느님 이라는, 교회라는 질서 안에서 자리를 잡아가길 희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반대되게 살았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1독서에 나온 것처럼 “언제면 초하룻날이 지나서 곡식을 내다팔지? 언제면 안식일이 지나서 밀을 내놓지?” 하면서 그 날이 ‘주님의 날’ 이란 것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보입니다. 그저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것만을 좇았던 이들이었습니다. 즉 이들은 자기가 쥐고 흔들어 대던 것에서 재미를 누리다가 거기에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게는 장사였겠지만 누구는 ‘자식’ 이구요. 누구는 ‘일’ 누구는 ‘명예’ 등등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재미를 누리고 그것을 놓치면 죽는 것처럼 여겼던 것들이 어떻게 나를 배반하고 떠나가고 있고 헛된 꿈에 불과했는 지를 말입니다.
2천년간 교회는 늘 ‘사람’ 에 대해 이야기 해왔습니다. 그것도 ‘사람이 무엇에 대해 갈증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1독서의 사람들은 하느님이 주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본인의 세계 안에 갇혀지내다가 회복할 수 있었던 기회도 잃어버립니다. 반면 복음의 세리나 죄인들은 그동안 표현하고 드러내진 못했지만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는 당신의 손 내밈에 기꺼이 응하며 손을 잡았기에 그처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린 늘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가 움켜쥐고 재미나게 여겼던 것들이 과연 나를 진정 살려주고 있었는가? 오히려 나를 메마르게 만들지는 않았었나?를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하느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가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당신의 말없는 기다림이 아닐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