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간 토요일. 애가 2,2-19; 마태 8,5-17
며칠 전 어떤 국회의원을 통해, 일명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발의하겠다는 보도를 보았는데요. 사실 많은 직장인들이 몸은 이미 퇴근을 했어도 지시를 받으면 그 때부터 업무의 연장일 때가 많습니다. 사실 그 뉴스를 보면서 좀 뜨끔했습니다. ‘이젠 단체장님에게 함부로 문자도 못 날리겠구나.’ 너무 늦은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 할 때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당이란 곳은 ‘24시간도 모자란 곳’ 입니다. 예를 들자면, 얼마 전에는 갑자기 장례가 났다고 해서 수원시에 있는 병원에 가기도 했고요. 세브란스 병원처럼 천주교를 안 좋아하는 곳에 가서 뭔가를 하기도 합니다. 평소 면회시간이 따로 있는 중환자실의 규정도 어겨가면서 병자성사를 주기도 하구요. 왜냐구요? 교우들이 원하니까요. 게다가 생명이 위급하니까요. 게다가 요즘에는 인터넷, 통신교리로 예비자 교리를 받는 분들도 늘어나고, 예비자 입교는 같은 날에 했어도, 사정이 생기면 세례식에 못 오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그분들의 사정을 일일이 체크하고 들어주면서, 빈 틈의 시간을 만들어 내어 해드려야 하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직장인에게는 ‘퇴근 후 삶’ 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럴 때, 신부라는 사람들까지 ‘업무가 끝났으니 다음 날 오라’ 고 말한다면 큰 일이 나겠지요.
이러한 자기 시간이 없는, 할애를 해야만 하는 형국은 지금이나 예수님 때나 비슷해 보입니다. 오늘 백인대장이 자기 종이 중풍으로 누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은 바로 답하십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퇴근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그 분의 활동에 오히려 숙연해집니다. 그러자 백인대장은 송구스러워 이렇게 말하지요.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계산이 깔려 있지 않음을 알았기에 감동스런 대답이 흘러나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는 “주님께 소리질러라” 라는 말이 나옵니다. 기도라는 것도 울며, 무릎을 꿇고, 통곡하는, 애절함과 간절함이 묻어있을 때 하늘이 감동합니다. 당연히 사람도 감동하지요. 세상은 업무와 비업무가 나뉘어 있길 바라지만,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그런 구분이 없는 사랑을 현실화 시킬 때 서로를 살려주는 참 사랑이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