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간 금요일. 야고 5,9-12;마르 10,1-12
몇 년 전 뉴스에 나온 얘기입니다. 태릉성당에서 성당 교육관 지하에다가 납골당을 설치하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담장 하나 사이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었기에 동네 주민들이 반대하는 시위를 하면서 결국 좌절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가서 살펴보니 진짜 가깝긴 했습니다. 여기서 학부모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이런 비교육적인 혐오시설을 학교 주변에 세워둬선 안된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교육을 표면적인 이유로 들고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보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의문이 들었습니다. ‘납골당이 비교육적이라고? 그러면 평생 안 죽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가?’ 진짜 교육을 하고 싶다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닌가?’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끌려는 모습이 보이던데요.
이번 주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이하면서 복음에서는 일주일 내내 영혼의 다양한 모습이 소개됩니다. 월요일은 악한 영의 성질에 대해서, 화요일은 높은 자리를 탐하는 모습, 수요일은 자기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 목요일은 참 생명을 얻기 위해 잘 버릴 줄 알아야 하는 것, 오늘 금요일은 약속과 서약의 중요성입니다. 우리가 다양한 영의 활동을 통해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내가 했던 약속을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가?’ 를 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바리사이들은 교묘하게 다가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내가 생각한 상황과 달리 돌아가면, 언제라도 사람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냐?’ 는 질문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악의 세력은 교묘하고도 그럴 듯하게 다가옵니다. 그러기에 선택을 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쉬운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늘면서, 그것이 결국 나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아차립니다. 참된 것이 무언지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지요. 이른바 눈 뜬 봉사로 만들어버립니다.
사실 우리는 어려운 결정을 잘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걸으신 십자가의 영성이 그러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을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이 필요한 때이고, 그런 결정 속에서 행동으로 옮겨야만 합니다. 상황은 늘 변합니다. 유리함, 불리함을 넘어서서, 더 참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의 영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린 주님을 닮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