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간 목요일.

2016. 4. 13. 오후 11: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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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3주간 목요일. 사도 8,26-40; 요한 6,44-51

  모두가 기도라는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알지만, 앉아있자니 재미가 없고, 그 뜻을 알고 싶으나 당장 떠오르는 것이 안 보여서, 조금 앉았다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일어나기일쑤인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어떻게 하세요?’ 라고 여쭤보면 묵주의 기도를 합니다.’ 라던가 차 타면서 화살기도를 합니다 라는 분이 참 많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아하~ 그래서 힘들어들 하시는구나..’ 여기는데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동안 기도가 힘들었던 이유를 몇 가지 분석하자면 이렇습니다. ‘기도를 단편적으로만 생각하기에 당신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했다. 의도를 모르니 하느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르다고만 여겨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줄곧 빌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당신이 해왔던 방식을 택해야만 하느님의 뜻이 곧 나의 뜻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입니다. 사실 우리가 왜 기도를 하겠습니까? 단순히 바라는 것을 얻고 감사함을 표시하기 수준이 전부가 아닙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는 내가 하는 일=주님의 일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하는 일이 곧 하느님의 일이 됩니다. 따로 쫓아다니면서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에 그것이 나옵니다.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저도 기도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숨 고르면서 앉아있기입니다. 이건 교황님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린 기다려야만 합니다. 언제 그 메시지가 떨어지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메시지를 설명한다는 이 강론도 실은 여러분이 알기 쉽게 풀었기 때문에 이나마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제 경우 기도하면서 받는 메시지는 단문장이나 단어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즉 당신이 먼저 주셔야 가능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잘 기다려서 메시지를 들었다면 이제 독서의 칸타케의 내시처럼 과감함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진리를 들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알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어떻게 합니까? 대다수 분들이 조금 해보고 안되면 포기합니다. 인내가 없어서일까요? 너무 똑똑해서 포기하는 게 낫다고 여겼을까요? 아이들도 공부를 이렇게 하지는 않지요. 실상 공부나 기도는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진리를 알려고 파고들고, 매달리고, 내 이성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일상도 이러한데 신의 음성을 듣는 것은 더 말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좋은 자세가 나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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