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간 목요일. 사도 8,26-40; 요한 6,44-51
모두가 기도라는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알지만, 앉아있자니 재미가 없고, 그 뜻을 알고 싶으나 당장 떠오르는 것이 안 보여서, 조금 앉았다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일어나기’ 일쑤인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어떻게 하세요?’ 라고 여쭤보면 ‘묵주의 기도를 합니다.’ 라던가 ‘차 타면서 화살기도를 합니다’ 라는 분이 참 많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아하~ 그래서 힘들어들 하시는구나..’ 여기는데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동안 기도가 힘들었던 이유를 몇 가지 분석하자면 이렇습니다. ‘① 기도를 단편적으로만 생각하기에 당신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했다. ② 의도를 모르니 하느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르다고만 여겨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줄곧 빌었다. ③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당신이 해왔던 방식을 택해야만 하느님의 뜻이 곧 나의 뜻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입니다. 사실 우리가 왜 기도를 하겠습니까? 단순히 바라는 것을 얻고 감사함을 표시하기 수준이 전부가 아닙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는 ‘내가 하는 일=주님의 일’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하는 일이 곧 하느님의 일이 됩니다. 따로 쫓아다니면서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에 그것이 나옵니다.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저도 기도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숨 고르면서 앉아있기입니다. 이건 교황님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린 기다려야만 합니다. 언제 그 메시지가 떨어지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메시지를 설명한다는 이 강론도 실은 여러분이 알기 쉽게 풀었기 때문에 이나마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제 경우 기도하면서 받는 메시지는 단문장이나 단어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즉 당신이 먼저 주셔야 가능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잘 기다려서 메시지를 들었다면 이제 독서의 칸타케의 내시처럼 과감함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진리를 들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알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어떻게 합니까? 대다수 분들이 조금 해보고 안되면 포기합니다. 인내가 없어서일까요? 너무 똑똑해서 포기하는 게 낫다고 여겼을까요? 아이들도 공부를 이렇게 하지는 않지요. 실상 공부나 기도는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진리를 알려고 파고들고, 매달리고, 내 이성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일상도 이러한데 신의 음성을 듣는 것은 더 말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좋은 자세가 나오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