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16. 4. 2. 오후 12: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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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사도 5,12-16;묵시 1,9-19;요한20,19-31

  416일에는 본당에서 세례식이 있습니다. 당연히 세례받을 분들의 상황을 알아야 하기에 면담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질문은 이랬습니다. 본인은 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야 합니까?” 이제부터가 흥미롭습니다. 분명 질문은 본인이 왜 신자가 되어야 하느냐?’ 였는데 대답은 본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다수 분들이 누가 권유해줘서 오게 되었다. 어떠어떠한 이유로 오게 되었다.라는 대답입니다. 즉 대답에 자기 자신이라는 사람은 없고, 남의 이야기, 분위기가 좋다는 등의 배경 이야기가 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저는 재차 묻지요. 물론 누가 이끌어주셨기에 오셨고, 처음 성당에 들어 왔을 때 분위기가 마음에 드셨겠습니다만, 이제 반 년 가량이 지나면서 여러 교육도 받았고, 첫 느낌과 다른 그 무언가도 만났는데, 그럼에도 왜 나는 굳이 신자가 되어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라고요. 결국 처음 질문과 같은 내용이지요. 그냥 편하게 착하게만 살면 됐지, 계명을 지키고 주일에 미사도 나와야 한다는 이 빡빡한 규율을 꼭 지켜야 하는 지, 굳이 내가 힘들게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명분과 이유에 대해서 확인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질문은 이미 신앙을 갖고 있다는 우리도 가끔씩은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대다수 분들이 이 신앙을 가지면, 막연하게 내게 무언가 떨어질 것이 있을 것이라는 이해 득실도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미사 시작에는 입당 성가를 부르기 때문에 입당송을 하지 않지만 오늘 매일미사 책의 입당송 부분에는 베드로 12장의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갓난 아기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여라 내가 신앙을 가져야 할 만한 순수함이 있다면 그 순수함은 과연 무엇일까요? 현실적으로 많은 분들이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오늘도 성당을 찾습니다. 1독서에도 나옵니다. 주님의 제자인 사도들이 표징과 이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고쳐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드로가 지나갈 때마다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길 바랍니다.” 실상 사도들이 기적을 베푼 이유는, 주님의 힘을 확신있게 믿고 따르게끔 하기 위한 것일 뿐, 기적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일단 지금에 모든 것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만 해결되면 다 되는 줄 알지요. 복음에는 그 유명한 토마스 사도 이야기입니다. 토마스는 말합니다. 나는 그 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보고 그 못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내용상으로는 보고서야 믿겠다고 하지만 정말 그가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 수난 성지주일 복음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 말고.” 그런데 정말 그 때 당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사람들이 믿었을까요? 아니지요. 그냥 마술이나 서커스처럼 생각했겠지요. 믿음이라는 차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참 믿음이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 후, 주님께서 제자들과 만나는 장면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습니다. 당신과 헤어진 지 불과 3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분을 몰라봤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부활은 단순하게 알던 사람이 깨어난다 는 차원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가끔 우리사이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잘 알던 사람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얼굴이 밝아져서 화색이 달라지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딴 사람 같습니다. 하물며 부활은 더 큰 상황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사랑하는 개포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그 주의점이란, 단순한 현상에 모든 것을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요행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 요행이 우리를 깨우쳐주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일부러라도 체험을 통해 당신 자신을 보여주기를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당신의 자비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제자들에게 찾아와 주셨고, 가끔 우리가 원하는 것도 들어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니까요. 이제 그 사랑의 정체를 알았다면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는 말씀이 어떤 뜻인 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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