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 금요일(성주간 금요일).이사 52,13-53,12;히브4,14-5,7-9.요한 18,1-19,42
오늘도 안간힘을 쓰며, 악다구니로 버텨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살기 위해서,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나락으로 안 떨어지려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얻고 싶어서..’ 였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분도 성공하고 싶으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치는 기적을 보이며, 하늘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던 제자들도 ‘그래~ 이 분이야 말로 세상의 변화를 일으킬 만한 분이다.’ 여기며 그 분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보입니다. 이미 이곳은 실패의 현장입니다. 그 분 곁에 아무도 없습니다. 제자들마저 도망가고, 3번이나 배반하며 떠나갔습니다. 모두들 그를 죽이라고 소리쳐댑니다. 철저한 외로움, 엄청난 비참함이 밀려옵니다. 맞습니다. 이 분은 완전히 실패하셨습니다. 눈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어떤 색으로 덧칠해서 미화(美化)시킬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제 이 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다면 어떤 선택을 해오셨습니까?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당신은 왜 사람으로 오셨을까요?’ 대답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신 이유는 실패하기 위해서’ 라고요. 사실 누구도 실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결혼도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는 이도 없어져가나 봅니다. 하지만 실패가 주는 힘을 믿는 사람이라면, 실패가 나쁜 것이 아님을 압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세속적인 실패는 모든 것을 걸만큼 결정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이지 않다는 말은, 다시 말해 나를 죽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지금의 이 상황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회복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가는 내 선택’ 에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실패입니다. 여기서 완전한 분이 실패의 불안함을 가진 인간의 삶을 택하신 이유를 봐야만 나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즉 불안함을 이기려면, 불안함의 정체를 들여다 봐야만 합니다.
문득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면 초연해집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지요. ‘그동안 내 삶은 어디에 매여 있었던가? 실상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나? 나를 망가뜨릴 정도로?’ 이런 질문을 하다보면 결국 선택을 하게 되지요. 내가 믿어왔던 확신어린 약속이 무엇이었나?를요. 주님은 실패의 지경에서도 그것을 보셨기에 비록 인간 같지 않게 십자가에서 망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실패하며 그렇게 성공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