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일.

2016. 2. 13. 오후 1: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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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일. 신명 26,4-10; 로마10,8-13; 루카 4,1-13

  오늘은 여기 계신 교우분들과 거행되는 마지막 주일미사입니다. 처음 왔을 때 저는 여러분께 3가지 약속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론 준비 잘 하겠습니다. 신부다운 신부되겠습니다. 라고요. 그것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잘 봐주셨던 주임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교우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늘 마지막 주일미사의 컨셉은 그것을 알려주마입니다. 2년간 기다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실상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습니다. ‘대체 머리는 왜 기르는 것이냐?’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해드릴 시점이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머리를 기른 지 벌써 10년째입니다. 신부가 되고나서 시작했으니까요. 물론 반발과 반대도 엄청났습니다. 예전 본당에서 제가 그 성당에 간 지 3일 만에, 본당 사무실로 책과 함께 편지가 배달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에 대한 소개였지만 마지막은 이런 결말이었습니다. 신부님머리 때문에 미사에 집중이 안되요~’ 목동 성당에 온 당일 날도 그랬습니다. 그 분은 저를 보자마자 아는 분에게 이렇게 속삭였답니다. ‘난 저 신부님 미사에 안 갈 거야...’ 제가 누군지, 무슨 말을 했는 지,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 지..는 이 분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전 신학생 시절, 교수 신부님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본당사목을 하시고 은퇴하신 신부님이 오셔서 특강 한 시간을 이렇게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신부가 되어서 본당 나가면 신자들이 다 좋아할 것 같지요? 안 그래요. 1/3은 여러분의 얼굴을 본 적조차 없는데도 이미 좋아하기 시작했고, 1/3은 여러분이 그동안 뭐하며 살았는지 몰라도 처음부터 싫어하고 있고, 나머지 1/3은 여러분에게 아무 관심도 없어요.’ 10년 동안 5개의 본당을 다니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서두가 길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정을 다 알면서도 왜 이런 행동을 취했을까요?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제 머리가 생머리인데다가, 짧으면 뻗치는 힘있는 모발입니다. 학생 때는 교칙상 짧아야 했기에 따르긴 했지만 선천적으로 머리가 뻗치는 스타일이기에 관리하기 힘들었습니다. 헤어제품을 발라도 보고, 퍼머도 해봤습니다만, 문제는 평소에 계속 빗으며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하지만 머리가 길어지면 차분하게 내려앉습니다. 게다가 길면 부지런해집니다. 새벽미사를 하려면 4시에는 일어나서 씻고, 감고, 말리고, 마음과 정신을 단장하면 5시 반에 고해성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저 자신을 관리하려고 말이지요. 또 하나는 사람들이 남들과 다르면 못 견뎌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못 견디기에 자기 나름의 선입견을 갖습니다. 외모가 그러니까, 성격도 그럴 거야’. 라던가, ‘뭘 좋아하니까, 이것도 그럴 거야 하면서, 자기 나름의 합리화를 펼칩니다. 저를 보시면서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뭔가 보통사람과 다르니까 불편하셨겠지요. 하지만 저는 기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우리가 가져왔던 선입견을 깨야한다.’ 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 그러합니다. 복음에서 악마는 3부분에 걸쳐 유혹을 시도합니다. 첫째는 인간의 본능인 식욕, 둘째는 인간이 가진 욕구인 명예욕, 권력욕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갖고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유혹들에 대해 성경을 가지고 반론을 펴십니다. 이제 악마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마 이런 심정이겠지요. 그래~ 네가 성경을 가지고 근거를 대고 있으니, 내가 그 성경 말씀으로 널 꺾어버리겠다 , 이제는 다른 차원인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교묘히 접근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사항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혹은 흔들리지 않으면, 탐나지 않으면, 유혹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악마는 내가 좋아하고 선호하는 것을 끌어댑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거기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아니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은 계속 유지하고 싶고, 흔들리고 싶어하지 않으니까요. 그러기에 악마는 그것을 가지고 파고듭니다. 당연히 사람은 자기 방어와 합리화를 하며 그렇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자기 합리화가 오히려 자신을 망칠 수도 있는데요.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사실 제일 조심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남에게 속으면 기분이 언짢지만, 자신에게 속으면 절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유혹받으심은 선입견과 경험을 넘어서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 희망은 겉을 보지 않는 당신의 참다운 시각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시간을 함께 해야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각자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선호도를 벗어날 때, 참다운 구원이 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떠납니다만, 그런 발견의 시간이 계속 이어지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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