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토요일. 1사무 9,1-10,1; 마르 2,13-17
예전 어느 본당에 있을 때 ‘집축복’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가정방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네가 가난한 이들과 부자가 극명하게 갈리는 동네였는데 그 날은 부유한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축복예식과 기도를 해드리고 가려고 했는데, 식사준비를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신부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에 너무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라 어쩔 수 없이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면서 그 날 같이 참여한 친정 아버지 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있자니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대충 내용은 이랬습니다. ‘그동안 자기네 집안과 유지관계를 맺어온 어떤 신부님이 돌아가셨는데, 이제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봐 줄 어떤 분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손녀 세례도 주고, 집안을 위해 기도해 줄 신부님이 필요한데 해주시겠습니까?’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른바 집안의 ‘집사 역할을 해 줄 신부’가 되어주겠느냐? 는 거래였습니다. 순간 경악했습니다. 부자 동네에 그런 제의를 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건 그 집안의 노예가 되라는 얘긴데요. 당연히 저는 거절을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내용은, 공적인 사람은 어느 누구만의 것이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세우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제 당신은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그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오.” 그럼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어때야 할까요? 복음에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무릇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것을 취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본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일에 동참하면서 자기 것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령, 사람을 선발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 선택하기, 같은 단체에 있지만 뒤에서 단체원을 이간질 하기. 본당의 일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얻으려 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기, 좋은 것을 혼자만 알고 나누지 않는 사람 등등 말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안에는 병든 이들이 꽤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린 참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비춰주어야 하고, 깨닫게 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이 공동체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꽤나 노력이 필요하고 끈질기게 해야 합니다. 사랑은 그래야 참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