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수요일. 이사 45,6-25;루카 7,18-23
세상을 살면서 불만이 많을 수 있는 현실입니다. 실상 세상은 못 믿을 것 투성이입니다. 나라가 보장한다는 정책, 사람이나, 은행, 투자기관의 금융, 직장이나, 심지어 가족, 친지까지도 언제 상황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계획한다고 되는 것만은 아니지요. 하지만 신앙에 의존한다는 신자들에게도 이런 것을 봅니다. 세상은 내 맘대로 안되지만, 교회 안에서 만큼은, 그래도 내 마음대로 되길 바라는 모습인데요. 하지만 어떻하지요? 하느님의 뜻은 우리와는 다른데요. 여기서 우린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게 됩니다. ‘우린 그동안 참 작은 것에 집착하고 있었구나’ 를 느끼는데요.
여기서 갑자기 욥이 하느님과 대화한 현장이 떠오릅니다. 욥기 38장에 하느님이 욥에게 묻습니다. “내가 땅을 세울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네가 그렇게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너는 눈 곳간에 들어간 적이 있으며 우박 곳간을 본 적이 있느냐? 너는 암사자에게 먹이를 사냥해 줄 수 있으며 힘센 사자의 식욕을 채워 줄 수 있느냐? ” 하시면서 계속 질문이 쏟아집니다. 당연히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그러기에 1독서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님이고 다른 이가 없다.” 무려 4번이나 반복되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들여다 볼 것이 있습니다.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을 살면서, 내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상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셨으니까요.
복음도 그렇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제자들을 시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그러자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이들을 고쳐주시고서 당신이 대답하시지요.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결국 당신이 다 알아서 하십니다. 그 분이 세상에 오실 때, 누구도 그 분을 맞아들이지 않았기에 구유에 누워 계셨구요. 누구도 그 분의 구원사업에 동참하지 않고 제자들조차 도망갔지만, 당신은 홀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지하 영혼과 화해하십니다. 게다가 누구도 그 분이 부활하도록 그 분을 깨워드린 사람도 없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당신이 다 하셨고요. 우린 그저 옆에 있는 것을 허락받았을 뿐입니다. 나는 그 분을 거들어 드렸을 뿐, 사실 거든다는 표현보다는 동참케 해주신 고마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상 내가 하는 것처럼만 보이십니까? 사실 주위 여건이 맞아야, 그 배경을 당신이 허락하셔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안다면, 지금의 난관을 통해 우리가 진정 무엇을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든 세상이 아니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