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간 금요일. 이사 48,17-19; 마태 11,16-19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 부류의 사람 중에서 긍정적인 부분만 골라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런 부류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꼭 같은 사람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주어진 일을 잘 하는 반면, 성격이 모나거나 빡빡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이 성격 좋고, 둥글둥글한 반면, 사람만 좋은 탓에,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이들도 만납니다. 물론 가족이나, 친한 소규모의 집단에서는 성격 좋고 무난한 사람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나 세상 같은, 많이 친하지 않은 이들이 모인 곳에서, 우선적으로 선택되어야 할 사람은 누구라고 여기십니까? 안타깝게도 뉴스를 보면 높은 공직에 있는 이들이, 자기 지역과 개인 것을 챙기느라 여념없는 사태를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교회에서도 만납니다. 예산편성 때가 되면, 자기 단체에 더 많은 예산을 신청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지 그러고 있고요. 같은 분과에 속한, 여러 단체장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공동 일을 추진하면서도 자기단체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끔, 일처리를 하는 분도 만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느낍니다. 직장에 다닌다고 해서, 꼭 공과 사를 구분 잘하는 것도 아님을 말입니다. 마치 아전인수(我田引水)같은 모습인데요.
오늘의 말씀이 그러한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보았을 때는 이렇게 느낀 모양입니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지만 결론을 이렇게 맺으십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그래서 1독서에도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아무리 사람이 좋아보여도,또는 자기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무엇을 했던 사람인가?’ 에 대한 대답은, 그의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지금도 보이니까요. 나는, 내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