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4주간 금요일. 다니 7,2-14; 루카 21,29-33
연극작품이기도 했고 다시 영화로도 만들어진, 피터 세퍼의 원작의 ‘아마데우스’ 라는 모차르트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 있습니다. 거기보면 모차르트를 시기하여 끝내 죽이는 ‘살리에리’ 라는 궁정 음악가가 나옵니다. 궁정에서 지정한 음악가이기에 거칠 것이 없었지요. 당대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줄만한 재능은 당연히 있었고요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수입도 좋았고, 안정된 자리였고, 게다가 명예욕도 채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받으며 이렇게 읖조립니다. ‘하느님은 모차르트를 죽이고 나를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드셨지요. 무려 32년간이나.. 아주 천천히 시들어가는 나를 주시하면서,, 나의 음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져갔고, 끝내는 아무도 내 음악을 연주하는 이가 없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의 음악은..’ 하면서요. 모차르트보다 오래 살고는 있긴 하지만, 살고 있음이 오히려 자신의 파멸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음악이 세상 사람들이 잊히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목격하며 하느님을 원망하는데요. 즉 살아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지옥체험’ 이었던 셈입니다.
요 며칠, 예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면서, 민주화를 일으킨 대통령과 독재정권을 일으킨 대통령이 서로 마주 대함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반대하던 이가 세상을 먼저 떴지만, 그 사실이 자신에게 득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작용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죽음은 자신이 세운 업적이 세상에서 잊히도록 만드는 죽음이요, 스스로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꼴이 되고 있으니까요.
오늘 독서는 이렇게 마감됩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복음도 그러합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은 그 당시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다수의 사람들이 신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지속되는 그 힘은 무엇일까요? 말씀에서 나오는 ‘영원함’ 이란 어떤 것일까? 를 묵상하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진 것처럼 보였던 그 분의 삶이, 오히려 승리였음을 보면서, 우리가 만나고픈 승리의 삶도 실은 어떤 모습의 승리여야 할까? 를 만나야만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