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다니 2,31-45;루카 21,5-11
우리가 잘 아는 기도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모두가 아시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셨다는 이 기도문의 특징은, “우리 아버지” 라는 호칭에 있습니다. 그 전까지 전통적인 개념은 하느님을 주인, 사람은 종의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전통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인 부자관계인 아버지와 자녀로 불리길 바라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사람의 사이가 무너진 것일까요? 지금부터 50년 전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미사 거행 시, 각 나라의 언어로 할 수 있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동안 철옹성 같던 전례가 뒤집어진 것입니다. 당연히 라틴어 미사만이 진짜 미사라고 믿던 이들 중에는 교회를 떠나는 등, 세계적으로 많은 이탈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너진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할까 합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자기가 막연히 알던 것들이 당신이 주시는 메시지를 통해 무너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나의 신앙이 완전히 무너진 것일까요? 앞의 3가지의 답 모두, ‘아니다’ 이지요. 왜냐하면 겉으로는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실은 제대로 세워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이 그러합니다. “임금님께서 쇠와 옹기 진흙이 섞여 있는 것을 보셨듯이 혼인으로 맺어지기는 하지만 쇠가 진흙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서로 결합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임금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느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하면서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새 나라가 올 것임을 예언합니다. 복음에도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하십니다. 주님의 죽음으로 옛 성전은 허물어지고 새 성전이 세워질 것임을 예언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주님의 성전을 만나고 있지요.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있을 때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실패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교회의 설명 방식이었습니다.
오늘 베트남 성인인 둥락 신부님과 동료 순교자들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알던 우리의 시각이, 그분의 부활로 우리 성인들의 실천으로, 죽음마저 우리를 끝장내지 못할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마치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그것이 새로운 완성이었음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