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목요일. 로마 14,7-12; 루카 15,1-10
남들은 이런 모습을 ‘집착’ 이다. ‘포기를 모르는 미련한 모습’ 이라고 일컬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정을 안다면 집착할 수 밖에 없구요. 포기라는 단어를 꺼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모습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세입니다.
복음만 보면 좀 이상합니다. 양 한 마리를 잃었다고 99마리를 놔둔 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는 모습이나, 은전 한 닢 잃었다고 샅샅이 뒤지는 모습이 영 미련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게다가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겠지요. 하지만 대다수가 포기를 잘합니다. ‘뭐 사정이 있겠지’ ‘내가 얘기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이 있겠어?’ ‘그 사람 오지랖도 참 넓네’ 하면서요. 사실 우리 곁에는 그런 이들이 많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입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저 자기 사정에 바쁘거나, ‘그건 참견이 아닐까요?’ 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데요.
주님의 사랑은 대단히 직접적인 표현으로 다가옵니다. 찾은 양을 “어깨에 메고” 라는 표현이나 “그것을 찾으면 친구와 이웃을 불러” 라는 표현처럼, 기쁨이 자기 안에서 고여 버리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퍼뜨리고 있습니다. 즉 나쁜 것도 전염되며 퍼지지만, 좋은 것도 퍼집니다. 좋은 것은 자기가 주체할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나은 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만방에 소문을 퍼뜨리는 장면’ 이 있습니다. 단순히 입이 가벼워서가 아니지요. 기쁨을 함께 할 때, 이 공동체가 가지는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대(同時代)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함께 느낄 수 있는 기쁨이지요.
1독서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 가운데에서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자기의 행복을 위하여 삽니다. 이 기쁨이란 당신의 자녀가 함께 하면서 더 커지는 기쁨입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주십시오. 잃었던 양을 찾았습니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처럼 말이지요. 그런 기쁨을 맛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