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간 수요일. 로마 2,1-11; 루카 11,42-46
사람들은 커가면서 변합니다. 좋은 쪽으로 변화가 되어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산다면 다행이지만, 반대로 별로 좋지 않은 면으로 변화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하는 분들을 가만히 보노라면, 얼핏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지위도 있고요. 남들이 오히려 칭찬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미지’에 치중한다는 사실입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봐주는가?’ 에 치중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인상을 주겠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특히 남들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부분인데요. 예를 들자면 오늘 말씀에 나온 경우입니다.
복음에서 바라사이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당시 바리사이들은 그럴 듯하게 살고있는 사람들입니다. 의무를 빠지지 않고 잘 하고 있으니 탓할 게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해야 하는 것들은, 눈에는 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랑, 배려, 용서’ 등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당장 눈에 띠지 않습니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은, 남들이 바로 알아주지 않기에, 이른바 나의 이미지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당장 표가 나는 것, 칭찬받는 것을 대다수 사람들이 주로 택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실명(實名)이 거론되는 곳에 기부금 기탁하기, 남들이 보이는 곳에서 기도하기, 사람 많은 곳에서 봉사하기 등입니다. 그럴 듯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뒤에서 남들을 욕하는 것에도 거침이 없습니다. 얼마나 이런 일이 많으면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책이 나왔겠습니까?
오늘 독서가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남을 심판하는 데 아낌없는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세상에서 칭송하는 그럴 듯한 인생을 사는 분들에게는, 이미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루카 복음 12장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어차피 보여질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보여지기 위한 이미지는 허상입니다. 우린 실체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위기가 닥치면 실상이 드러나는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들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