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대축일.
이사 66,10-14; 1코린 7,25-35; 마태 18,1-5
다들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말씀드리는 사안을 들으시면서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다른 지 보셨으면 합니다. ‘엄마 저건 뭐야?’ ‘이 동물은 이름이 뭐야?’ 하면서 대체로 어린 시절에는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친구 사귀기를 원합니다. 놀이터에서 학교에서 새 친구와 즐겁게 놀며 새로운 놀이를 합니다. 놀이 속에서 사회적 질서와 규칙을 배우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어린이들이 막상 어른이 되면 달라집니다. 일단 질문부터가 다릅니다. 자기 아이가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면 이렇게 묻습니다. ‘걔는 성적이 몇 등이야?, 집 평수는 얼마래?, 집이 부자니?’ 등. 아이들과 다르게 어른들은 숫자적으로 질문을 던지는데요. 우린 왜 이렇게 되어갈까요?
오늘 대축일을 맞이한 데레사 성녀는 1897년 자신의 언니 레오니아에게 편지로 이렇게 적습니다. “나는 항상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랑과 희생의 꽃을 꺾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예수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그 꽃들을 바쳐드린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첫째 예수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 둘째로 예수님을 위로해드리기 위해 희생의 꽃을 바치는 것. 이 두 가지가 바로 성녀의 행동원칙이 됩니다. 이를 덧붙이며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이 성녀가 되고 싶다면 그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다만 한 가지 원칙만 가지면 됩니다. 즉 예수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더욱 친밀히 그분께 결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어느 사이엔가 우린 변했습니다. 사람을 사귀고 돕기보다 사람을 돕기보다는, 남에 대한 관심을 끄고 뭔가를 가지며 뽐내는데 더 신경 썼습니다. 남 눈치보기를 하느님보다 더 크게 생각했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것보다 내 만족과 과시에 더 중점을 뒀습니다. 우린 처음부터 그러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이 되었어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