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일

2015. 9. 12. 오후 2:03:36

글자

연중 24주일 어린이 미사

봉달 :  (헉헉...) 신부님, 신부님~ 물어볼 게 있어요.

신부 뭔데? 말해봐요.

봉달 : 이거.... 저만 아는..., 저만 발견한 건데요...

           (조심스럽게..) 예수님이요...혹시 왕따였죠?

신부 : 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봉달 : 아니.. 말씀하시는 게... 좀 이상하잖아요?

           기적 베풀면서 인기도 좋으셨는데, 갑자기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난다고

           하시구요.. 제자인 베드로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리는데도,

           기어이 그렇게 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잖아요?

           게다가 독서에서도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맡긴다” 고 하니, 이게 도대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왕따이셨던 것 같아요.. 제 말이 맞죠?

신부 : ~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러면 봉달이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셔야 하는데요?

봉달 : ... 저 같으면.. 인기 날릴 때, 한창 돈 벌어서 맛있는 거 사먹구요.

           내 말 듣는 사람 만들기 위해, 공부 열심히 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구... 그래야요...     

          그래야 좋은 거 아니에요?

신부 : 그럼... 그걸 예수님이 좋아하셨을까?

봉달 : ... 그럼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해요? 왕따 당하긴 싫은데요..~~~

신부 : 뭐 물어볼께요.. 혹시 친구들 중에 연예인 하고 싶다는 아이 있어요?

봉달 :.... 있어요..

신부 : 그러면 그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어요?

          “네가 나중에 드라마에 출연하고 가수가 되어도, 사람들이 너를

            잘 알아보지도 못하고, 인기가 없어도.. 너 그거 계속 할래?”

봉달 : 아이~~ 그걸 제가 어떻게 물어봐요?.. 누가 그러고 싶겠어요?

신부 : 하지만 연기를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면 그래도 기어이 할텐데요..

           예수님도 그럴려고 그 일을 하신 거 아닐까요?

봉달 : ? 그게 뭔 말씀이래요?

신부 : 우리가 아는 예수님이 예수님이실 수 있었던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일까?” 하는 문제를

           더 소중히 여겼던 분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했지요.

           왜냐하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필요했기에, 꼭 하셔야 했기에 하신 거죠.

봉달 : ~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남의 눈치 보면서 인기 끌려고 살지말고

           정말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이 해야하는 일을 해야 하겠군요.

           그럼 저도 그런 거 찾아 해볼래요.

신부 : 그래요. 잘 찾아서 멋진 봉달이가 되셔요... 안녕~~~


연중 24주일 어른용. 이사야 50,5-9; 야고 2,14-18; 마르 8,27-35

 

 예전에 은퇴하신 어떤 할아버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제가 신부라는 것을 아셨기에 당신 자신이 살아오셨던 시간을 잠시 회상조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젊을 때 여러 취미를 많이 했어요. 볼링도 가고, 골프도 하고, 낚시도 하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진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더라구. 그 때는 내가 잘 하는 줄 알았고, 그래서 여러 가지를 가리지 않고 찾아서 했었는데.. 시간이 나를 이렇게 만들 줄 알았다면.. 하나라도 제대로 할 것을 그랬어요...’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것, 참 중요하지요. 헌데, 젊을 때부터 그랬다면 더 다행이었을 것을.. 하는 말씀이던데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프랑스어로 딜레땅뜨(Dilettante) 입니다. 물론 이 용어에는 칭찬의 의미도 있습니다. 교양인이라는 뜻도 있고요.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마추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에 비해서는 예술적 관심이 많지만, 전문가에 비하면 정확성이나 책임성이 뒤떨어지는 정도의 겉핥기의 수준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관심은 많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사람', '어떤 분야에 깊이 탐구하지 않고 피상적으로만 아는 사람' 당연히 이런 사람은 그 당시 유행하는 사안에 대해 민감하고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봐 줄까?에 더 신경을 씁니다. 그러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의 토대 위에 너무 많은 자재를 올려놓지 마라. 기반이 단단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세우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전체 건물이 무너진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도, 세상은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자극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대로 하는 것일텐데요.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미 여러분께서는 성경의 줄거리를 다 아시기에 답변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자들은 좀 달랐지요. 그 분에 대한 선지식도 없었고, 그 분과 직접 생활하면서 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봤다는 우리도 꼭 답변을 잘 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라는 분이 나를 구원해주시고, 내가 따라야 할 진정한 삶의 방법을 알려주시는 분이라고 알기보다는, 그저 종교 하나 있으면 되는 정도, 게다가 세상에서 말하는 이미지 괜찮은 정도의 종교 중에 하나, 또는 그 분 말씀대로 하면 좋다는 것을 아는 정도. 당신의 삶을 닮고 싶긴하지만 그대로 실현하기는 하기 싫거나, 힘들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라면... 우리가 갖고 있다는 이 신앙도 딜레땅뜨라고 칭할 수 있지 아닐까요? 주님에 대해서는 확실히는 모르는, 신앙의 아마추어 수준 말이지요.

오늘 당신은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하십니다. 이른바 나는 목숨 내놓고 복음 선포를 하는 사람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신앙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께서도 여러분이 하시는 일에 목숨과 맞바꿀만한 이 정도의 열정과 사명감이 있으십니까? 그러기에 그 분이 쓰신 방법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폭력과 심문에 대응하시는 주님의 방식은 침묵이었습니다. 나는 잘 하고 있다. 제대로 하고 있다 하고 소리칠 만한데 당신은 가만히 대응하시면서 할 일을 하십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까지 그래서는 안되겠는데요.

  사랑하는 목동 본당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인간적으로 대단하셨던 이유는 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각오하고도 자신의 사명감을 찾아가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두려워합니다. 자존심, 위신, 갖고있던 것들을 잃을까봐 말이지요. 하지만 정말 한 번뿐인 인생이라면, 나 자신한테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진정 가야할 자리를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인생마저 아마추어로 살 수는 없잖습니까? 내 인생은 리얼한 프로입니다. 내가 몸 바쳐서 일하고, 내가 땀 흘려 벌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세례받은 모든 신자라면 자기의 삶을 살아야하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신앙인이라 불릴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진정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잘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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