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 주간 수요일.

2015. 9. 9. 오전 8: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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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 주간 수요일. 콜로새서 3,1-11; 루카 6.20-26.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난과 부의 개념은 어떤 것이라 여기십니까? 아무래도 사람마다 그 관념과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이 정도는 있어야 살만 하겠다.’ ‘이 정도는 갖추어져야 사람 구실 할 수 있다.’ 등 정도의 차이는 참으로 다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 정도 라는 개념조차도 실제로는 처음부터 내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데요.

  오늘 복음은 참으로 껄끄럽습니다. 쉽게 와 닿지도 않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라니까요. 아니! 아무리 없어도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냐?. 없는 와중에서 사람 구실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가난이 행복하다니..’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잘 들여다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말씀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가난함을 통해야만, 나 자신을 하느님께 개방할 수 있고 그렇게 할 때 자기의 삶을 받아들이면서 주님을 체험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전 이냐시오 성인 같은 경우에는, 없는 와중에서도 가지고 있던 성경책, 교과서를 팔아가며 가난한 상태에서 강론하길 즐겨했답니다. 사실 공부하는 이에게 책이란, 마치 젊은 여자에게 화장품과도 비슷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열중해있는 부의 악순환은, 가난을 통해서야 비로소 부서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진 책이 많다고 하여 제대로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회 총장 한스 콜벤바흐 신부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죄가 생기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명과 사랑의 보물을 망각하게 만드는 부()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부(), 자신의 모든 것을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느님을 반항하고, 단지 지금 가진 것을 편취하여, 소유하느라 열중하기 때문이다.’ 라고요.

  즉 자신이 현재 가진 것을 지키고, 늘리고, 열중만 하다보면 진정 만나야 할 것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린 현재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처음부터 내 것 이었다고 착각을 하다보면 결국 얻게되는 것은, 더욱 빈곤한 상황일 뿐입니다. 마치 자식을 자기 소유물이라고 여기면서 쥐고 흔들었던 교육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우린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한 가난을 통해 결국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아야 할지 잘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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