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간 금요일.

2015. 9. 4. 오후 2: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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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2주간 금요일. 콜로새서 1,15-20;루카 5,33-39

  프랑스에 가면 까르푸라고 우리나라 같은 이마트 같은 곳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우리나라 소주값 정도밖에 되지 않는 1~2유로 정도의 와인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격 숫자 뒤에 0이 하나 더 붙지요. 한창 와인에 대해 붐이 일던 무렵, 호기심 차원으로 와인가게에 들어갔습니다. 헌데 어떤 손님이 주인에게 묻습니다. 집에 비싼 와인이 있는데 오래 묵힐수록 좋냐?’ 고요. 주인은 대답합니다. ‘와인 자체가 빨리 마시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묵히지 말랍니다.’ 더욱이 보통의 가정집은 와인을 오래 저장해 두기에 알맞지 않은 곳이고 변질되기 쉬우니, 당장 마실수록 좋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통념대로 그냥 묵히고만 있는데요.

  사람들이 나이를 먹다보면 옛 것에 대한 향수와, 당시 잘 나갔던 때를 회상합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리즈시절입니다. 그 시절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게 좋아보이니 그렇게 합니다. 게다가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은 문제가 다릅니다. 그 문제란 신앙이 굳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생동감을 잃어버립니다. 예전 것에만 잡혀 살다보니 현재의 것을 감사하지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건 엄청난 손실입니다. 앞으로 몇 십년을 더 살아야 할 사람들이 과거에 그냥 묶여서 사니까요. 신앙이 갖고있는 본래 성격의 성질은 늘 새롭다는 점입니다.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 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 외에도 독서에선 창조, 화해 등의 단어가 나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즉 신앙으로 인해, 기도로 인해, 늘 새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신앙인이 예전의 것에서만 맴돈다면, 매번 드리는 기도를 통해, 미사를 통해 지금의 시간을 기뻐해야 하는 데도 예전 잘 나갔던 때에만 머물려고만 든다면 이것은 문제이겠지요. 기도하는 사람과 밖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언제나 새 포도주라는 사실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만나는 메시지는 예전에 들었던 막연함이 아니라 그야말로 현실적입니다. 2015년도 9월에 맞는 이야기입니다. 헌데 우리가 묵은 포도주같이 예전에 보았던 맛에 멈춰버리고 좋아라만 한다면 과연 새롭게 다가오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까요?

  기도의 메시지는 노래로 따지면, 항상 신곡입니다. 이미 메시지를 담는 틀, 그릇이 달라졌습니다. 나이도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성숙되었습니다. 그렇게 다가오는 메시지는 이미 새로움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새로움을 항상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늙어갈지라도, 그렇게 할 때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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