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목요일. 여호 3,7-17;마태 18,21-19,1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 예루살렘에 순례하러 갔다가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내용이 나옵니다. 헌데 문제는 그는 그 예언서가 의미하는 바를 모릅니다. 그러자 곁을 지나가던 필립보가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내시는 "누가 나에게 설명해 주어야 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자 필립보는 이내 성서 말씀과 예수님의 복음을 설명합니다. 그 후 물 가까이에 이르게 되자, 그 내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 여기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아서는 안될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배움을 통해 알았기에 과감하게 세례를 청하고 필립보는 세례를 주는데요. 과연 우리도 내가 아는 것을 얼마만큼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십니까?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독서에서는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물가에 다다르자 “내가 모세와 함께 있어 준 것처럼 너와도 함께 있어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시면서 홍해의 기적이 떠올려지는, 요르단 강 한복판 마른 땅을 밟고 구원의 땅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의약속을 이뤄내시지요. 복음에도 보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한다.” 하시면서 그 용서가 빚을 탕감해주고, 서로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역할이 되는 기적이을 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삶 안에서 기적을 어떻게 만나십니까?
가끔 젊은 어머님들과 면담을 하게 됩니다. 다들 자식 걱정 때문에 힘들어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중2병 등,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었으니 그러하시겠지요. 사연을 쭉 듣다가 은근하게 물어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지만 하나같이..‘제가 참아야지요’ 라던가, ‘더 큰 배려와 사랑을 해야겠지요’ 하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헌데 본인들이 말씀해놓고도 막연하고 불안한 표정들입니다. 그러자 재차 말씀드려봅니다. ‘예수님이 쓰셨던 방법을 써보셨나요?’ 여기서 말씀드리는 예수님의 방법이란 우리가 아는 말씀을 통해 현실로 구체화 된 방법을 말합니다. 내 믿음이 현실로 나의 삶에 투영되는 맛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분들이 현실에 닥쳤을 때, 예전 자신이 알던 방법만을 시도할 뿐, 주님이 쓰셨던 방법, 즉 사랑하는데 확실하고 구체화된 방책은 잘 쓰려고 하지 않으시던데요. 오히려 주님이 쓰신 방법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내가 세례를 받아서는 안될 것이 무엇입니까?” 라는 대답이나,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갔던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용서라는 거침없는 행동을 통해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갔던 기적을 나의 삶에서도 만나셔야 하겠습니다. 그게 우리가 만나고, 보고픈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배우고 알던 방법을 통해 실현시켜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