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목요일.

2015. 8. 12. 오후 10: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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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9주간 목요일. 여호 3,7-17;마태 18,21-19,1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 예루살렘에 순례하러 갔다가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내용이 나옵니다. 헌데 문제는 그는 그 예언서가 의미하는 바를 모릅니다. 그러자 곁을 지나가던 필립보가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내시는 "누가 나에게 설명해 주어야 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자 필립보는 이내 성서 말씀과 예수님의 복음을 설명합니다. 그 후 물 가까이에 이르게 되자, 그 내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 여기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아서는 안될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배움을 통해 알았기에 과감하게 세례를 청하고 필립보는 세례를 주는데요. 과연 우리도 내가 아는 것을 얼마만큼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십니까?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독서에서는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물가에 다다르자 내가 모세와 함께 있어 준 것처럼 너와도 함께 있어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시면서 홍해의 기적이 떠올려지는, 요르단 강 한복판 마른 땅을 밟고 구원의 땅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의약속을 이뤄내시지요. 복음에도 보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한다.” 하시면서 그 용서가 빚을 탕감해주고, 서로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역할이 되는 기적이을 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삶 안에서 기적을 어떻게 만나십니까?

  가끔 젊은 어머님들과 면담을 하게 됩니다. 다들 자식 걱정 때문에 힘들어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중2병 등,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었으니 그러하시겠지요. 사연을 쭉 듣다가 은근하게 물어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하지만 하나같이..‘제가 참아야지요라던가, 더 큰 배려와 사랑을 해야겠지요 하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헌데 본인들이 말씀해놓고도 막연하고 불안한 표정들입니다. 그러자 재차 말씀드려봅니다. ‘예수님이 쓰셨던 방법을 써보셨나요?’ 여기서 말씀드리는 예수님의 방법이란 우리가 아는 말씀을 통해 현실로 구체화 된 방법을 말합니다. 내 믿음이 현실로 나의 삶에 투영되는 맛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분들이 현실에 닥쳤을 때, 예전 자신이 알던 방법만을 시도할 뿐, 주님이 쓰셨던 방법, 즉 사랑하는데 확실하고 구체화된 방책은 잘 쓰려고 하지 않으시던데요. 오히려 주님이 쓰신 방법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내가 세례를 받아서는 안될 것이 무엇입니까?” 라는 대답이나,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갔던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용서라는 거침없는 행동을 통해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갔던 기적을 나의 삶에서도 만나셔야 하겠습니다. 그게 우리가 만나고, 보고픈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배우고 알던 방법을 통해 실현시켜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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