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금요일.

2015. 8. 7. 오전 11: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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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8주간 금요일. 신명 4,32-40; 마태 16,24-28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자네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매? 그럼 예수님이라는 분에 대해 잘 알겠구만? 그 분은 어떤 분이야? 어디서 태어나셨고? 돌아가실 때는 나이가 몇이었데? 설교는 몇 차례나 했다나? 제일 중요한 복음이 뭐야?’... 그런데 그 친구에 물음에 그 사람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 ‘아니 신자가 되었다면서 몰라?’... ‘맞아, 난 잘 몰라. 그래서 부끄러워 하지만 이건 알아. 3년 전에 나는 알콜 중독자였고, 빚을 지고 있었고,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되어 갔지. 저녁마다 아내가 자식들은 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무서워 했어. 그러나 이제는 술도 끊고 빚도 다 갚았어.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목이 빠져라 기다릴 정도야. 우리 집은 그야말로 화목한 가정이 되었어. 이게 모두 내가 믿는 예수님이라는 분 덕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난 믿어. 다른 것을 몰라도 이만큼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네.’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느님에 대해서 남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을까요? 단지 성경 몇 장 몇 절에 쓰인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을 이뤄주는 하느님이 아니라, 당신을 믿은 이 후로, 좋은 방향으로 변화된 내 삶을 설명하고, 설명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 주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요.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신명기에 모세가 하느님과 있었던 관계의 기억을 되살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과연 이와 같은 일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고요. 과연 기억을 되새겨본다면, 내가 똑똑하고 잘 나서, 이만큼이나마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제시하신 길이 힘들지만 그 길을 겪으면서 나를 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가족, 친지, 동료, 선후배 더 나아가 모르는 남과 함께 하면서, 나 자신을 접고 꺾을 때, 나 자신을 잘 죽일 때, 남을 살리고, 내가 바라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을 때만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보다 더 위에 있는 그 분의 삶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변화가 일어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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