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레위 25,1-17;마태 14,1-12
벌써 15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 당시 교회는, 곧 다가올 2천년의 대희년을 선포하고 앞으로 다가올 희망적인 3천년기를 준비하던 시기였구요. 각 나라에서는 전 세계 모든 컴퓨터가 다운될 것이라는 ‘밀레니엄 공포’로 두려워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공포는 없었고요. 로마 베드로 대성당의 희년문이 열리면서 당시 IMF로 힘들었던 우리나라에서도 희망을 다질 수 있었는데요.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94년 대희년을 준비하던 문헌인, 「제삼천년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자기 자녀들이 참회를 통하여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부터 자신을 정화하도록 격려하지 않고는,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33항)고 천명하시면서,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 주님의 원래 정신으로 회복하자고 하셨고, 관계의 회복 속에서, 각종 빚에 시달리는 이들, 특히 세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전세금, 월세금을 올리지 말고, 부채가 있다면 탕감해주자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정신과 실천의 근거가 된 말씀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오십 년 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면서 희년이란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때를 다시 체험하면서 모두가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각인시키고, 가나안 땅에서 나누어 받은 재산이, 다른 사람의 손에 영원히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각자의 것을 보존해주려는 취지였습니다. 노예가 있다면 풀어주고, 빚이 있다면 없애주자는 취지의 발언은 예전에 나온 말이라고는 놀라울 정도로 혁신적인데요.
분명 우리 국어사전에도 ‘탕감’ 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탕감이란 ‘세금이나 빚 따위를 덜어 주거나 모두 없애 줌’을 의미합니다. 허나 요즘의 세상에서는 그런 단어가 있는 지 조차 모를 지경입니다. 게다가 복음에 나온 세례자 요한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헤로데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건만, 자기 체면을 지키다가 결국 무죄한 이의 죽음을 허락하는 현장을 보며 우리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요? 기념일을 맞이한 리구오리 주교님도 당시 교회를 개혁하려던 분이었으나 반대파에 의해 살아 생전에는 결과를 보진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그 정신을 기린 후손들이 이뤄냈지요. 그렇다면, 서로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는 족쇄같은 이 끈을 끊을 열쇠는 바로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그 정신을 삶에서 실천해내야 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