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수요일.민수 13,1-14,35; 마태 15,21-28
예전 선조 23년,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나라로 국서를 보냅니다. ‘우리 일본이 곧바로 명나라에 들어가 일본 풍속으로 4백여 주를 바꾸고, 제도의 정화를 억만년토록 시행하고자 함이 나의 마음이니, 조선이 우리를 들어오게 해준다면 장래에 희망이 있을 것이요, 걱정이 없을 것’ 이라고요. 길을 비켜달라는 일본의 상태가 궁금했기에, 1590년 3월 조선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이 일본을 다녀오지만 각자 상반된 보고를 올립니다. 정사였던 황윤길은 ‘왜적은 반드시 침범할 것이오니 대비책을 마련하시라면서, 풍신수길은 눈에 광채가 있으니 담력과 지력을 겸비한 사람같다’ 고 보고합니다. 이에 부사인 김성일은 ‘일본에서 그런 정황을 보지 못했으니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풍신수길은 그 눈이 쥐와 같으니 두려울 게 없사옵니다.’ 라고 말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도 이런 상반된 의견은 오늘 독서에도 그대로 보여주는데요.
오늘 독서 내용은 드디어 약속된 땅을 눈 앞에 두고 정찰을 다녀오는 얘기입니다. 12지파에서 각 한 사람씩 보내어 40일간 정찰을 합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보고는 상반됩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곳 과일입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다는 의견도 내놓습니다.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허나 다른 진영의 사람들은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들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라고요. 불안한 마음에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받았던 약속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은 ‘관찰’입니다. 하지만 이 관찰도 현상과 편견에 잡혀있는 관찰이라면. 나의 생각에 가로막히는 어리석음을 만나게 됩니다. 매일, 매 번 해야 하는 것이 선택이요,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선택과 판단을 잘하기 위한 여러분이 갖고계신 근거란 무엇입니까? 그저 기분입니까? 단순한 예상입니까? 주위 사람들의 의견입니까? 오늘 가나안 부인이 주님께 다가와 마귀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사실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도 아닙니다. 자기네가 믿던 신이 따로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를 강아지에 비유하면서 매달립니다. 모르긴해도 그녀는 단순한 선입견이나 현상에 휘둘리지 않는 관찰을 통해 당신을 바라봤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네가 바라는 데로 될 것이다.” 하는 결과를 얻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런 것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