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목요일.

2015. 7. 22. 오후 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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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간 목요일. 탈출 19,1-20; 마태 13,10-17

  우리는 미사 중에 성체와 성혈이 축성되는 현장을 바라봅니다. 물론 겉모양은 여전히 내가 알던 빵의 모습이고 술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변화의 시간을 거치면, 더 이상 우리가 알고있던 빵이요, 술이 아니랍니다. 사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기도가 신앙의 신비여입니다. 이 모든 차원이 믿음의 차원이라는 신비로운 차원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가톨릭 기도서 성 토마스의 성체찬미가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이런 것이 떠오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잘 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복음에서는 제자들은 묻습니다. 자기들에게는 쉽게 말해주면서 왜 저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라고 대답을 듣습니다. 언뜻 사람을 차별하는 것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지요. 여기서 우린 내가 알고 있던 주님을, 과연 주님으로 보려는 자세가 선행되었었는가?’ 를 봐야 하는데요. 1독서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당신을 드러내려 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사람들이 해야 할 바를 말씀하십니다. 오늘과 내일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셋째 날을 준비하여라.” 약속된 주님의 기운을 느끼는 날, 당신을 드러내시는 날, 우리는 뭘해야 할까요? 요즘 같이 더운 날, 로마 바티칸 성전에도 관광객이 많이 찾아옵니다. 특히 미켈란젤로 그림이 많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은 성스러운 장소이므로 경건한 자세와 드레스 코드를 지켜주십시오." 반바지, 민소매, 짧은 치마처럼 노출이 심한 옷차림과 슬리퍼는 사절이랍니다. 이런 자세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요?

  복음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복음에서 말씀하는 가진 자 , 당신을 아는 사람입니다. 당신을 아는 이들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이기에, 당신을 제대로 모시려 합니다. 제대로 모시려는 속에서, 서로의 관계는 점차 돈독해지고 발전됩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자기 생각과 느낌대로만 움직이려 합니다. 근거없는 생각과 느낌은 매 번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그 때마다 다르게 행동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린 기도 속에서 만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를 정돈하고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입니다. 신앙을 통해 이 사항을 잘 체득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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