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금요일. 고린2서 11,18-30; 마태 6,19-23
예전 제가 신학교 다닐 무렵, 지금은 없어졌습니다만, 신학교 건물 한 편, 허름한 창고에 ‘신기료’ 라고 하는 2평 남짓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신기료’ 란 헌신을 깁는 사람을 말하지요. 사실 신학생들이 돈이 없잖습니까? 남들 다 한다는 아르바이트도 일부러 못하게 만듭니다. 그 시간에 기도에 더 충실하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살다보면 신발도 구멍나고, 가방끈도 끊어지고, 본드 붙인 것도 떨어집니다. 그럴 때 이름과 학년을 써서 이 곳에 맡기면, 어느 사이엔가 고쳐져서 제 방에 배달이 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이것을 하는 지도 알려져 있지 않고, 일하는 장면도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누가 하는 지도 모르니 어디다 고마워해야 할지도 참 난감합니다. 다들 학생이니까, 공부하면서 틈틈이 해주는 것이지요. 물론 실력은 깔끔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서로의 것을 돌봐주려는 마음이 아름다운데요.
오늘 바오로는 일부러 세상 사람 같은 자랑질을 해봅니다. “나도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도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지요. 복음 선포를 위해 수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 하는 이야기란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나를 짓누릅니다.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라고요. 그토록 매를 맞고, 여러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들에게 내쳐지더라도 그는 왜 멈추지 않았을까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하지만 대다수가 보물을 땅에 쌓지요. 그게 요즘 말로 하면 스펙쌓기이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걱정하기보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 살 길을 먼저 구하는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는 어이없는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다음 달에 세례를 받는 사람인데 갑자기 회사 이벤트에 당첨되어 여행을 가게 되었으니 세례를 따로 받을 수 있게 해줄 수 있냐?’ 고요.
예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죽을 고생을 다 하며 남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자기 영혼을 구하는 것과 해외여행을 맞바꾸려들까요? 약해져 가는 신앙인들을 바라보며 참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까? 이것을 잘 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