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목요일. 고린2 11,1-11; 마태 6,7-15
여러분께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이 곳에 속해있기에 대신 사과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가끔 사목자나 수도자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남 앞에서 훈화라던가 이른바 ‘한 말씀’ 이란 것을 할 때가 있습니다. 교우들이 요청을 하시니까, 해야하는 타이밍입니다. 지금처럼 강론자리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의견을 발표하는 행위는 심히 주의해야 하고, 가급적이면 하지 않는 것이 좋지요. 아무리 의도가 좋은 것이라 해도, 막상 듣는 입장에서는 헷갈리거나 혼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본당에서도 이미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 신부님에 의해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운영을 교구 방침과 다르게 했다거나, 지금 본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나와 있듯, 예비자들이 세례명을 정하는 기준으로 ‘자신의 생일과 비슷한 날을 정하라’ 따위의 이야기는, 사실 근거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방침을 어기고 자신의 생일과 비슷한 성인을 고르면 편할 것 같지만, 오히려 이는 원래 세례명을 정하는 의미를 호도하는 꼴이고, 결국 신자들의 혼란만 야기시킬 뿐입니다.
오늘 독서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당시에도 거짓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여러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그러자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까지 하지요.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주니 말입니다.” 아픈 이야기이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가끔 성직자, 수도자중에도 개인적인 의견이 마치 교회의 입장인 양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듣는 여러분은 잘못이 없습니다. 아닌 것을 맞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항하기가 어려우시니까요. 그러기에 저는 이런 방법을 택합니다. 비록 재미가 없더라도, 근거가 있는 교회 가르침을 찾아서 이야기하고, 저도 잘 모른다면 얘기를 않거나 다음으로 미룹니다. 어떤 때는 답답해 하실 수도 있지만 그게 나중을 위해서는 낫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 의견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가르침에 대한 바라보는 시각과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것은 너무 민감하기에 당장 결론 내리기 힘든 것도 있습니다. 어렵기에 우리 자신을 주님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바라볼 필요를 더더욱 느낍니다.
복음에 나온 “그러니 그들을 닮지마라” 라는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 자세와 현명한 지혜가 필요한데요. 항상 자신을 놔버리지 않고 계속 정진해 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