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수요일

2015. 6. 9. 오후 7:26:13

글자

연중 10주간 수요일. 2고린 3,4-11; 마태 5,17-19

  우리 성당 엘리베이터 옆에는 큰 성경이 있습니다. 교우들이 참여한 성경필사본입니다. 잘 쓰여진 글씨가 힘차고 이쁘게도 보입니다만, 만약 단순히 쓰기에만 주력했다면 이건 쓴 분에게나, 읽는 분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 썼느냐?’ 는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요. 예전 우리 선조들이 공부한 여러 방법 중에서 책을 읽고 핵심을 잡아서 베껴 쓴 초서(抄書)’라는 방법을 즐겨 이용했다고 합니다. 공부는 눈으로 보는 목과(目過), 입으로 읽는 구과(口過), 그리고 손으로 쓰는 수과(手過)가 있다는데요.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말합니다. 눈으로 읽는 것은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것만 못하다. 입으로 읽는 것은 손으로 써 가면서 읽는 것만 못하다. 좋은 책은 베껴 써 가며 읽어라. ’ 이렇게 접하기 힘든 책을 손으로 직접 써 가면서 수고를 다한다면 책에서 말하는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에는 이런 사람이 잘 없지요. 그저 컴퓨터 마우스로 드르륵 캡쳐하여 복사하면 일이 끝난다고 여기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그 내용이 머리로, 가슴으로 새겨지지 않을텐데요.

  오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지키고 스스로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우리는 참된 것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참된 것을 따르는 이에게 이 현실은, 예전의 배웠던 것과 처음에는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르침 받은 내용이 지금의 상태와 꼭 같지는 않아 보이니까요. 하지만 베껴가면서 글을 살펴, 제대로 성찰한 사람이라면 지금의 현실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 적용력이 가능할 때 공부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읽고, 믿어, 받아들일 때, 변화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여기서 언급한 문자란, 그저 눈으로 쓰윽 한 번 쳐다 본, 차원의 죽은 지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내 가슴을 울려 실천으로 옮기게 만들어주는데요. 이 살아있는 힘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우리의 자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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