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7주간 금요일. 요한 21,15-19
서기 100년 경에 쓰인 요한복음을 요새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내려면 어떤 점이 필요할까요?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담헌 홍대용은 맹자가 이야기한 ‘이의역지(以意逆志)’ 방법으로 독서를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즉 ‘나의 뜻을 가지고 지은이의 뜻을 거슬러 구해야 한다’ 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책에는 글쓴이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럼 그 뜻을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와 이미 나와는 시공간의 엄청난 차이가 나기에 이를 줄여야 하겠지요. 하나하나 눈금을 맞추고 눈높이를 조정하면 한 순간에 핀트가 맞는 것을 느끼면서 정작 글쓴이가 말하고자 했던 의도를 알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에 나온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런 물음을 던집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뒤이어 나온 똑같은 질문은 사실 이 첫 번 질문을 제대로 알고 대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그냥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수준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대하는 사랑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는 비교급의 질문입니다. 그럼 베드로는 그 대답을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하지요. 뒤이어 베드로가 어떻게 될는지 말씀하십니다.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늙어서는’ 이란 표현은 ‘장차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이란 뜻도 됩니다. 그래서 판∙검사등의 고위관리자들을 부를 때 ‘영감’ 이란 단어를 쓰잖습니까?
사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도 당연히 본인들이 원하는 바가 있겠지요. 허나 그렇게만 한다면 공동체가 잘 돌아가겠습니까?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지요.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혼자서는 자칫 욕심에 빠져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 수도 있으니, 이 자리에 오른 내가 자리에 맞게 살면서 항상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 주위에는 주님의 자녀로 살면서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거나, 남처럼 하지 못해서 힘들어 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미 그 답은 배워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