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티아 사도 축일. 사도 1,15-26; 요한 15,9-17
부르심이란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저도 성소(聖召)라는 것을 받고 이 생활을 하곤 있습니다만, 한편으론 바람 같습니다. 잡았다고, 움켜쥐었다고 느꼈다가도, 돌아보면 어떤 때는 아무 것도 없어보일 때가 있구요. 내가 원한 것과 다르게 움직여지는 것을 봅니다. 내가 원한 것이 이루어져서 행복할 때보다는, 그 반대로 ‘내 뜻과 어그러지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만나게 해주는 구나’ 를 확인하는 시간은, 인간적으로 볼 때 씁쓸하면서도 이를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게 해주는 상황을 맞이하는데요. 어쩌면 떠나간 동료인 유다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제자들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제 갈 길을 그렇게 가버린 유다의 결정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겠구요. 그러면서 이 길이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요, 가기 싫다고 도망가는 자리가 아니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데요.
오늘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자기가 알고 있던 것을 나누는 사이인 친구. 감히 하느님과 사람이 친구 사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고 먼저 그렇게 대하신 당신의 사랑을 바라보며 이 친구 사이는 이제까지 사귀었던 그저 그런 사이가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당신과 하나되면서 무언가를 얻어가고, 알아가고, 깨달아 가는 사이가 되는데요.
마티아 사도의 축일을 맞이하면서 그의 뽑힘을 통해 사도들도, 마티아 자신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그 자신도 한편으로는 막막하고, 한편으로는 벅차면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해갔겠지요. 당연히 두려움도 버거움도 들었겠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차원을 만나게 되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인사(人事)문제가 사람 사이에 제일 중요한 면을 차지하듯, 우리도 그 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냥 그렇게 행해온 방식에서 자꾸 쇄신해 나가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 기도를 통해 헤아릴 수 없던 차원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