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목요일. 사도 15,7-21; 요한 15,9-11
성경을 처음 공부하다보면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정의와 율법을 내세우시는데, 신약에서는 사랑만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과연 같은 하느님이 맞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았더라면 쉽게 의문은 풀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행동에는 언뜻 보이지 않는 일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관성이란, 바로 약속의 실현입니다.
분명 처음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율법과 계명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잘 지키기보다 어긋나기를 선택합니다. 요새 사람들도 그렇지요. 국가가 법을 세웁니다만, 사람들은 법에 모두 명시되어 있지 않는 틈을 노립니다. 그러면서 범죄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몇 가지 안 되던 율법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다 지키지 못할 일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가 말하지요.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이미 율법의 한계를 봤다는 말이 됩니다. 글자 하나하나 조항에만 머물면 꼬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럴 때 주님은 이번 주 내내 반복되어 온 그 말씀,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평소 하느님의 의도와 정신을 떠올리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미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이 말씀은 아모스 예언서 9장 11절에서 12절의 내용입니다. 이미 누구도 제외하지 않겠다는 보편적인 구원주의, 당신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자~ 상황이 이렇다면 당신의 약속에는 일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모든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길 원합니다. 비록 자기가 노력은 잘 안 해도 말이지요. 그렇다면 공부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폭넓고도 깊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전 읽었던 예비자 교리서를 최근에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경과 주님의 기본 정신을 최대한 담으려 했던 이 교재를 가끔이라도 안 읽고 무시하면 오해하게 되고요. 결국 왜곡된 하느님 상을 갖게 됩니다. 믿더라도 차근차근 따져가며 꼼꼼히 살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구원을 준비하신 그분의 일관성과 계획성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