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월요일. 사도 4,23-31; 요한 3,1-8
겨울방학 마지막 무렵 학사님들에게 숙제를 하나 내주었습니다. 두 주간에 걸쳐 성공회, 개신교, 동방 정교회, 루터교 등을 다녀오라고요. 그동안 천주교만 다녔으니 우리가 지닌 신앙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모를 수 있기에 바람도 쐴 겸, 하느님을 믿는 다른 종파들을 만나는 체험을 시켰습니다. 대신 이에 대한 느낌을 적은 보고서 하나만 쓰라고 했습니다. 그 중 한 학사님이 이렇게 써주었습니다.
성공회 신부님은 정통과 안정된 것을 원하면 가톨릭을 믿는 것이, 변화와 진보된 것을 원하면 성공회를 믿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저는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는 “그러면 신자들이 성공회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그 신부님은 저희에게 ‘학사님 아니세요?’라고 물어본 것으로 봐서 가톨릭 신부님이었다가 성공회로 간 것처럼 느껴졌기에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질문을 마음속에 묻어두었습니다.... 라고 적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견학하는 사람의 분위기가 남달랐기에 어느 정도 눈치를 챘던 모양인데요.
하느님과 성모님, 성인들 그리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교회가 2천년간 이만큼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보면서 자칫 조심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교회가 너무 제도화가 되거나, 시스템 상으로 안정되기만을 바라다가는 자칫 인간적인 단체로 전락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와 말씀은 성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에서는 니코데모에게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하시고요. 독서에서는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니코데모는 바리사이 중에서 최고의회 의원인만큼 대단한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님” 으로 알아볼 만큼 시각도 열린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그 너머 이상으로까지는 바라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우린 신앙을 통해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뜻이 이뤄지긴 하지만, 그 성령을 제대로 알아보고 잘 담아내기 위한 그릇을 평소부터 잘 준비해둬야 한다는 점입니다. 서기 339년에 태어난 유명한 수도승인 난장이 압바 요한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그의 수행을 칭찬합니다. 두 세 번 같은 이야기를 해대자, 요한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은 여기 온 후로 줄곧 나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남들의 칭찬이나 평판에 휘둘리기보다 나 자신에게 잠심하여 들어갈 때, 성령을 잘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그런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