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2015. 4. 9. 오후 3: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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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사도 3,11-26; 루카 24,35-48

  많은 경우 어려움이 닥치면 여러 타입의 사람들을 봅니다. 우선 도망가는 방법입니다. 일단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다보면 느낍니다. 그게 항상 좋은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이는 이미 어른인데 아직도 이 방법만을 고수하는 분도 있던데요. 또 하나는, 맞서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힘이 딸리면, 버틸 능력이 없으면 깨질 수 밖에 없는 힘든 방법입니다. 하지만 구멍이 조금이라도 뚫리면 그때부터는 승산이 있지요. ~ 두 방법 모두 한계가 있는데요. 그건 나 홀로 스스로 알아서 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나 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는 도망을 선택했고요. 유다는 예수님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기에 주님을 팔아넘기지요. 그게 자신한테도 이득이었고, 율법학자들도 바라는, 모두가 윈-(win-win) 하는 전략이었으니까요.

  도망가고 배반하는 이 두 방법 중, 유다가 쓴 방법이야말로 세상이 가르쳐준 방법입니다. 내 맘대로 안 되면, 나 스스로 이를 부숴버리거나 팔아넘깁니다. 특히 똑똑하다는 사람일수록 이런 방법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자면, 정치가의 경우 철새처럼 무소속 또는 당을 옮겨 다니거나, 자신이 일한 직장의 비밀을 빼돌려서 이득을 챙기는 경우가 그렇지요. 왜요? 믿음보다는, 자기가 우선 살기 위해서지요. 답은 나 혼자 찾아야 한다고 믿으면서요. 하지만 유다는 나중에 이를 뉘우치면서 홀로 해결할 수 없다는 벽에 부딛혀 답을 찾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답을 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세상이라는 판은 내가 만든 장본인이 아니니까요. 결국 하느님의 법이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법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세상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독서에서 이런 우리를 토닥이며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방법이 최선인 줄 알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사실 당신은 우리가 이미 이럴 줄 아셨습니다. 그랬기에 독서와 복음말씀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고 하셨던 것입니다. 당신이 만들어 놓으신 게임장 위에 서 있다면, 이제 이를 승복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고, 주님도 우리가 지금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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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가 자기 뜻이 이뤄지길 바라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뜻=나의 뜻이 어떤 건지를 안다


우선 내가 받은 소명이 무언지를 본다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본다

그 흐름 안에서 움직이는 일정한 규칙을 보라

그러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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