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금요일. 호세아 14,2-10; 마르 12,28-34
교우분들과 면담을 하면서 많은 말씀을 듣는데요. 거기서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받은 상처와 어려움을 토로하시는데 그것이 발생된 이유는 잘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되물어봅니다. ‘그럼 자매님의 삶의 기준은 뭐에요?’ 그러면 대다수가 ‘가족이요’ 합니다. 그런데 이 답이 맞는 것처럼 들리십니까? 안타깝게도 가족은 우리 삶의 동반자이긴 하지만 내 삶의 기준은 아닙니다. 기준이란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문제는 가족 구성원이 내 맘 같지 않고 계속 변하는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가 다시 묻지요. ‘변하는 것에서는 답을 구할 수 없습니다. 변치 않는 것을 잡으셔야 변하는 것도 잡을 수 있어요. 그럼 변치 않는 기준은 뭘까요?’ 그제서야 ‘그러면 하느님인가요?’ 하고 제게 되묻습니다. 결국 답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답을 선택하지는 않았던 셈인데요.
오늘 말씀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죄악으로 비틀거리는 백성을 바라보며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하고 이야기 합니다. 똑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누구는 잘 가는 것처럼 보이고 나는 계속 우왕좌왕입니다. 붙잡고 있었던 기준이 사실 기준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러기에 복음에서도 율법학자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물었던 것입니다. 이미 당시에도 율법조항이 너무 많아졌기에 어떤 것을 잡아야 할지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에 주님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말씀하시자 “훌륭하십니다. 과연 옳은 말씀입니다.” 하고 응답합니다. 그도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 밑에 깔아놓고만 있었지 확실하게는 몰랐던 셈이지요.
우리는 그동안 갖고 있던 구슬을 꿰는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배우기만 하면 뭘 합니까? 실행해야지요. 실행하기만 하면 뭘 합니까? 거기서 깨우쳐야지요. 깨우치면 뭘 합니까?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담아두고만 있는데요. 우린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 혼자서는 알 수 없다. 주님이 탁~하고 건드려주실 때, 우리의 명오(明悟)가 열려 알아듣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계시종교인 것입니다. 그분이 나에게 어떻게 개입하여 주시는가?를 헤아릴 때 더 이상 헤매지 않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