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월요일. 다니엘 9,4-10; 루카 6,36-38
제가 즐겨 외워보지만 아직까지도 쉽지만은 않은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50장 4절에 있는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라는 구절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먹어가고 인생을 배워갈수록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익혀갑니다만, 자기 살기에도 버거운 세상에, 남 사는 방식에도 참견하며 자신의 방식을 쓰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말씀처럼 다정한 말보다는 직설적인 어투가 나오게 되고, 배우는 마음보다는, 지시적인 마음으로 남을 훈계하려다 보니, 상황이 포근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분란만 생기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요.
오늘 복음도 이와 마찬가지의 모습을 바라보게 해줍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방식대로 살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해하는 경우를 만나곤 합니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까지 어린 사람이라면,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가르치며 훈수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은 무엇일까요? 내가 전부라고 여기는 그 판단과 결정이, 과연 지금 시기와도 맞는 것인지, 또는 지금 생각해도 더 지혜롭고 올바른 것인지를 알아야 하겠는데요. 같은 시대와 장소에, 다양한 사람들을 보내주신 하느님의 섭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사람을 통하여 하느님의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게끔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마치 진리인 양 여기다가 자기마저도 속아 넘어가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요.
세상이 참 많이 거칠어졌습니다. 험하고 급한 세상일수록, 한 번 쓰윽 보고 판단하는 경솔함을 보이기보다는, 주님의 시각에서 좀 느리더라도 일단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더 지켜봐주는 자세, 그것이 복음에서 들었던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한” 자세가 될 것입니다. 만나는 이들마다 이것을 해줘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