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수요일 . 예레미아 18,18-20;마태 20,17-28
오늘 복음을 가만히 묵상하고 있자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답답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다가옴을 느끼시고, 계속해서 수난예고를 하고 계시는데도, 눈치없는 제자들과 그 어머니는, 나중에 앉을 자리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식이 나중에 받을 것만을 바라는 어머니를 보며, 다른 제자들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복음서를 읽으면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대하는 모습입니다.
수난의 의미도, 주님이 누구이신지도, 자신들이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섬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무리 가르치고, 또 갖가지 기적들을 보여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질책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가까이 부르십니다. 사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이해하는 폭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를 멀리하고, 눈을 돌려버리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여기만 떠나면 저 사람 꼴 안 볼텐데.’ 하고 말입니다.
신학교에 있을 때, 심술궂은 한 선배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형제는 자신의 고민을 실컷 털어놓고서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나 저런 사람이랑 정말 못 살겠어. 아무래도 난 신학교 체질이 아닌 것 같아.’ 그 형제의 말을 듣고 있던 친구는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약 니가 이 곳에서 그 형제와 화해하지 않고 여기를 떠난다면, 니가 갈 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그곳에서 아마 똑같은 사람을 또 만나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을텐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분명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그건 하느님의 섭리라고 봐, 그럼 그 사람을 통해 니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려는 하느님의 뜻이 있지 않겠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철부지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십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런 너그러움과 인내하심은, 훗날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다시금 살아났을 것입니다. ‘아... 주님이 그렇게도 부족했던 나를 끝까지 참아 주시고, 인내롭게 기다려 주셨구나!’ 하면서 말이지요. 은총의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내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형제들을 대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