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히브리 13,1-8;마르 6,14-29
예전에 남해로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는 신부님의 소개로 간만에 해안가로 지방 구경을 갔습니다. 그 때 그 곳에서 사목하고 계신 신부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이런 해안지방에는 민간신앙이 많아서 전교가 잘 안되실텐데.. 어떻게 하십니까?’ 라고요. 그러자 ‘맞다’ 고 인정하시면서 실상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안가나 섬에 잡신이나 민간신앙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삶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려면 날씨에 민감할 수 밖에 없고, 바다 날씨는 워낙 알 수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이별을 받아들여만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당장 기댈 수 있는 것을 찾게 되고, 그렇게 굿이나 무당 등을 통해 풀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오늘 축일을 맞이한 바오로 미키 수사님은 일본인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천주교가 시작되었고 박해도 우리보다 심했습니다. 작은 무인도로 도망간 신자들을 색출하러 사무라이까지 보내어 순교시켰으니까요. 이런 때에 미키 수사님은 당시 불교승려들과 토론을 해가며 선교하는데 앞장을 섰다는데요. 사실 그 분도 일본이라는 섬나라의 한계와 당시 사람들의 한계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지배층은 이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순교하신 것이구요.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보통은 헤로데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내 왕국의 절반이라고 주겠다.” 는 그의 허세,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는 그의 이미지 관리에 대해서지요. 결국 헤로데가 총체적인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사실 그의 죽음을 부추킨 것은 헤로디아였습니다. 시아주버니와 살려는 잘못된 결혼을 그녀 자신도 알았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결혼을 시도한 그녀의 야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을 없애는 엄청난 짓을 감행하지요.
오늘 독서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 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쉽게 살려고 하기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가 우리의 관건일 것입니다. 쉬운 것, 편한 것만이 우릴 인도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