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목요일. 히브 3,7-14; 마르 1,40-45
많은 교우분들이 아쉬워하고 후회하시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것은 ‘그동안 기도할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다.’ 고 말씀하는 부분입니다. 사실 기도하지 말라고 막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만, 단지 기도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보이고, 마치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그럴 것입니다. 게다가 가끔씩은 ‘내가 기도를 잘하고 있는건가?’ 에 대해 공동체의 확인을 받아야 어둠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데, 대다수가 이를 꺼리기 때문에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또는 그 반대인지를 확인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인데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너희가 그 분의 소리를 듣게 되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마라.” 사실 당신의 말씀이 꼭 기분 좋게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어떤 때는 대단한 헌신과 정성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또 어떤 때는 그것이 이뤄지기 위해 무작정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꼭 상쾌하지 않고 부담감이 많아져 우울할 때가 있는데요. 이럴 때, 우리의 마음은 완고해지고 굳어지지요. 그런데 그렇게 굳어지고 나서 여러분은 무얼 느끼셨습니까? 신앙을 가지고 기도를 배우는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작정 자기 기분에 도취되어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내 뜻이 마치 하느님의 뜻인 양 여기지요.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이단들이 그러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입니다. 이름은 들어보신, 나주 윤 율리아 상황과 메주고리예의 경우입니다. 두 상황 모두 성모님의 발현이나 기적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주 상황은 파문으로 처리되었고, 메주고리예는 최종결정이 유보된 상태이지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둘의 차이는, 나주는 교회의 판단을 거절하였고, 메주고리예는 교회의 유보판결을 일단은 받아들이고 기다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당시 예수님은 유랑설교가였습니다. 그러기에 당신 기적으로 마무리 지으면 사회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던 사제와 율법학자들에게 몸을 보이게 해서, 그 시스템을 통해서 인정받는 것이 확실함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도 가끔은 공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독학으로만 하다보면 그동안 교회사에서 벌어졌던 사고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나눔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도 서로 기도한 것을 나누실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