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목요일. 마태오 1,18-24
우리는 엄마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지만 정작 아버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아버지를 마치 뒷방 노인네쯤으로 여겨가는 이 세상에 얼마 전 보았던 앤 랜더즈의 ‘나의 아버지는 내가..’ 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네 살 때 :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다섯살 때 : 아빠는 많은 걸 알고 계셨다.
여섯 살 때 : 아빠는 다른 애들의 아빠보다 똑똑하셨다.
여덟 살 때 : 아빠가 모든 걸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었다.
열 살 때 : 아빠가 어렸을 때는 지금과 확실히 많은 게 달랐다.
열두 살 때 : 아빠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빠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엔 너무 늙으셨다
열네 살 때 :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스물 한 살 때 : 우리 아빠말야? 구제불능일 정도로 시대에 뒤졌지
스물 다섯 살 때 : 아빠는 그것에 대해 약간 알기는 하신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 오셨으니까.
서른살 때 :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 시니까.
서른 다섯 살 때 : 아버지에게 여쭙기 전에는 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흔 살 때 : 아버지라면 이럴 땐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아버진 그 만큼 현명하고 세상 경험이 많으시다
쉰 살 때 : 아버지가 지금 내 곁에 계셔서 이 모든 걸 말씀 드릴 수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가를
미처 알지 못했 던 게 후회스럽다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도 있었는데
난 그렇 게 하지 못했다.
오늘 복음은 모든 이의 아버지의 표상이신 요셉성인이 나옵니다. 요셉성인. 참 안타까운 분입니다. 장가는 들었지만 아내 마리아는 이미 임신을 한 상태이고요. 그래서 파혼하기로 마음먹지만, 천사가 나타나 이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요즘 세대 젊은이들은 자신만 바라보고 살기에 당장에 끝장을 내는 결단을 내렸겠습니다만,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그렇지 않았지요. 뭔가 둔한 면이 있는 듯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있으셨지만 바른 품새로 사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요셉 성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가집니다. 성경에 많은 분량이 나오진 않지만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쓴 흔적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살펴가는가 바라 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