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미사 주례
방금 여러분께서는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라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각기 따로 살아온 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을 혼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주님의 몸’으로 표현하시면서 그 몸을 먹으라고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즉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말은 서로의 몸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는, 증여가 담겨있는 사랑의 차원이라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앞에 앉아 있는 신랑, 신부도 그렇게 서로를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저에게 결혼을 하려는 신랑, 신부들이 와서 “주례를 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해오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이란 “그동안 많은 남자와 여자들을 보셨을텐데.. 그 많은 남자 중에서, 그 많은 여자 중에서.. 왜 하필이면 꼭 이 사람이어야 합니까?” 라고요. 사랑은 느낌 가는 데로 할 수 있겠지만, 결혼은 인생의 매듭을 묶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점이기에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연애기간을 6년 가량 했다는 오늘의 신랑, 신부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남윤상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신뢰가 의심으로 변한 적이 없었습니다. 역경 속에서도 스텔라는 ‘오빠의 큰 꿈을 같이 꿀 수 있어서 좋아~’ 라는 말에 평생 같이 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습니다.” 라고 하였고, 신부 이정선 스텔라는 ‘6년간 사귀어보면서 다른 커플이나 친구들의 헤어진 이유를 많이 듣게 되었지만, 신랑 남윤상 바오로의 행동에서는 그런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에 사랑의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고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제가 이태원 본당에 있을 때 각각 전례부장과 레지오 단장 및 청년회장을 맡으면서 본당을 위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 직무가 일로써만 끝나지 않고, 서로의 사랑으로 열매를 맺는 장면을 통해, 둘 간의 사랑이 얼마나 숭고했었는가..를 우리에게 감동으로 전해주고 있는데요.
아까 복음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서로가 한 몸이 되고, 서로 힘든 일이 있더라도 갈라지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갈멜의 산길’, ‘어둔 밤’ 을 지은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이는,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이는,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이는,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쉽게 말해 이런 뜻입니다. 그동안 6년간의 연애 기간이 서로를 알게 해주는 기간이었습니다만, 어쩌면 그 기간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데에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요. 즉 ‘너에 대해서 다 안다~’ 고 생각하고 결혼을 했는데, 막상 결혼하고 지내보니, 상대방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실망한다거나,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하는 식의 생각이 나올 수 있을 상황을 만날테고요. 거기서부터 또 다른 문제에 돌입할 수가 있는데요.
사랑하는 신랑 남윤상 바오로와 신부 이정선 스텔라 그리고 하객 여러분들
그동안의 세월을 지내면서 서로에 대해 ‘다 안다’ 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다 알고 있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을 때, 예전의 관념과 기대에서 벗어나 지금 둘 만이 나눌 수 있는 삶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전의 6년은 이미 과거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앞으로를 살아야만 합니다. 당연히 여건은 계속 달라질 것입니다. 달라지기에 예전에 해왔던 방식대로 서로를 대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삶이 아닌, 현재를 산다면 분명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