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2014. 11. 10. 오후 11: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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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티토 2,1-14; 루카 17,7-10

  지금은 돌아가신 분 중에 지학순 주님과교 원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장일순 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직접 책을 쓴 것은 없지만 그는 김지하 시인의 스승이었고요. 이미 20대 때에는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세계를 하나의 연립정부로 만드려는 시도를 한, ‘원 월드 운동에도 참여하는데요. 그런 장일순이 일행들과 함께 골짜기를 내려오는데, 이미 서로가 같이 밥을 먹으며 한 잔 한 얼굴이었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술힘을 빌려서 장일순에게 평소에 가졌던 의문 하나를 털어낼 요량으로 앞으로 나섰답니다. 선생님” “그래 왜?” “선생님은 남들 보고는 기어라, 기어라 하시면서 정작 선생님 자신은 기는 법이 없습니까?” 그야말로 돌발사항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들 장일순이 어떻게 나올까 구미가 당긴다는 얼굴로 보았답니다. 하지만 장일순은 잠시의 짬도 두지 않고 바로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합니다. 포장도 안 된 흙길이었는데 말이지요.

  오늘 독서에서는 그대 자신을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로 보여주십시오. 가르칠 때에는 고결하고 품위있게 하고 트집 잡을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고요. 복음에서는 너희도 분부대로 받은데로 하고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전보다 배운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반면 자신을 숙이는 사람들은 점점 없어졌습니다. 이젠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도 듣기 힘들어졌습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데 웃는 낯으로 갑자기 쓰윽 다가와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마하려 듭니다. 즉 웃음으로 때우겠다는 심보이지요. 자존심만 세지고, 자신의 과오를 숙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기에, 관계는 점차 어긋날 수 밖에 없는데요.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마르티노 주교님은 원래 로마의 장교였답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남을 생각하는 따스한 피가 흘렀던 모양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던 사람에게 자신의 외투를 잘라주었을 정도니까요. 외투는 장교에게는 상징같은 존재였는데 말이지요. 신앙인은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받을 요량을 생각한다거나, 내가 이것을 해주면 어떤 결과물이 떨어질까 머리 굴리지 않습니다. 해달라고 손 벌리면 들어주고,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용서해주고, 진심으로 깊이 머리를 숙이면 그 사람과 화해가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뒤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러질 못합니다. '내가 이것을 하면 과연 될까?’ 하는 생각과 자존심 생각에 진심과 정성의 깊이는 옅어지고 마는데요. 생각은 깊되, 결단과 행동은 신속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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