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금요일. 루카 16,1-8
성경을 조금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경 속의 등장인물이 꼭 착한 사람들만 나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같이 ‘약은 청지기의 비유’ 를 보면서 과연 무슨 의도로 쓰여졌는지, 그럼 우리도 이렇게 살라는 말인지 헷갈릴 수 있는데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항은 우리도 그동안 약은 청지기와 같은 생활을 했었다고 말씀드린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그 집사는 정말로 적절하게 대처를 합니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즉, 그의 삶의 모습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발 빠른 결단과 대처능력은 분명 본받을 만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만 읽어보면 이런 집사가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물어보실 만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실은 이런 행동을 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본당에 일이 생기면 서로가 도와서 난국을 타개합니다. 어떤 행사가 있는데 서로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누군가는 나서서 힘을 합쳐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협상을 하면서 마음을 돌리는 시도를 말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이러한 대처능력은 누구 못지않게, 복음서에 나온 집사보다도 더욱 민첩한 모습을 보입니다. 다 살기 위해서이지요. 어쩌면 이렇게 살려고 하는 몸부림 덕택에 이만큼 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부족한 점도 눈에 띕니다. 즉 잘못되어 엇나간 신앙의 길을 다시 되돌아오려는 시도는 과연 그렇게 발빠르고 확고한 지를 따져본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입니다. 자꾸 게으름을 피우고, ‘다음에 할께~’ 하면서 핑계를 대고, 그러다 시간만 보내고 있는 분을, 한 집안에서도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린 위령의 달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장례식에 가끔 가보지만 이것이 꼭 남의 이야기만도 아닌데요. 그 차례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습니다. 집사가 처한 대처하려는 방식을 삶의 모습을 살피면서,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데도 그만큼 열심한 지를 한 번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