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에페소 1,11-14; 루카 12,1-7
우리는 살면서 꽤나 불안해합니다. 조심스럽습니다. 다칠까봐 무섭고, 상처받으면 다가오는 후폭풍이 힘들까봐서 말이지요. 하지만 정말 불안해야 하고 조심스러워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혹시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정도가 어느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지 보셨습니까? 비록 신자라 할 지라도 불안해하는 정도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수준일 때가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비교하면서 그들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힘들어하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부부들이나 자녀들과는 좀 차이나는 가족들의 현재 상태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미워하고, 멀리 있는 사람일수록 부러워하거나 동경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안 믿는 사람과 다를 바가 별로 없어 보인다면, 나는 이제부터 어떤 신앙생활을 가져야 할까요?
오늘 말씀이 그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약속’입니다. 독서에 나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하고 있고요. 복음에도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을 죽여도 그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 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님은 순교를 각오하면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 그는 이미 죽음을 통하여 새 생명을 얻길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새 생명을 희망하는 이는, 어떤 것도 날 다치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이미 면역력이 갖춰있기에 어떤 병원균도 뚫고 들어올 수 없으며, 이미 행복한 상태이기에 남들이 거론하는 얄팍한 수준의 행복에 눈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견진교리 강좌가 시작됩니다. 이미 우리 본당에도 견진을 받은 이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에 몸을 떨고 계신다면, 당신께서 주신 약속을 별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데요. 이미 하느님은 여러 번 당신의 삶을 통해 약속을 실행하셨습니다. 그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에 가로막혀, 그 약속이 나를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참 아쉬운데요. 여러분은 과연 무얼 믿고 계십니까? 약속된 바를 믿으시는 정도에 따라 여러분의 길도 그만큼 열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