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간 목요일

2014. 9. 18. 오전 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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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4주간 목요일. 고린115,1-11; 루카 7,36-50

  가끔 교우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런 경우를 발견합니다. ‘다시 주님을 믿고 싶어서 왔다 고요.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있기까지에는 이런 것이 들어있습니다. 내 힘만으로는 안되었다..’ 나 홀로 계획하고 실행하면 잘 될 줄 알았지만, 실상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개인적으로 실망도 있었겠지만 결국 내가 돌아갈 곳이 어딘지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신앙이란 그분에게서 무엇을 받았는지 기억할 때, 그제서야 내가 해야 할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고 박해하였던 과거가 있었지요. 그때는 그것이 옳다고 여겼지만, 주님을 체험한 후, 예전의 삶을 벗어나 신념대로, 확신대로 살아갑니다. 체험 받은 은총이 자신을 살린 셈이지요. 복음에 나오는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사연인지, 주님을 찾아와서 말도 하지 않은 채 울면서 시작합니다. 눈물로 그 분의 발을 적시고, 본인의 머리카락으로 닦아내고, 그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바릅니다. 남들은 그 여자에 대한 안 좋은 평판을 들어 알 뿐, 그녀가 느낀 정확한 감정은 모르지요.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이 받은 고마움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하지만 정작 주님을 초대한 사람은 그냥 냉랭합니다. 그는 주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지만 주님과의 더 깊은 차원의 관계는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한 채, 주님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우린 이런 말씀을 보게 됩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마음이 닫혀있으면, 주님이 들어오실 공간도 없어집니다. 당연히 지금의 나를 고수하기에 주님이 어떤 것을 보여줘도 감흥이 나지 않습니다. 이미 나는 굳어져 있으니까요. 신앙인은 사랑하는 사람이랍니다. 그 사랑은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은 서로를 살려냅니다. 그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는 말은, ‘하느님인 내가 도와줘서 고맙지?’ 가 아니라 너의 열린 마음이 오히려 나를 도왔다 는 차원을 보며, ‘기적이 벌어지기 위해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 를 바라본다면 진정 주님을 잘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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