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간 화요일. 2테살 2,1-17; 마태 23,23-26
우리가 역사공부를 하는 이유가 지금을 잘 살고, 미래를 잘 살고자 역사를 공부한다고 하지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한국교회의 흐름이 보였습니다. 이번에 시복식을 계기로 여러분도 한국 초기 교회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겠습니다만, 평신도로 시작된 이 교회가 한불통상조약 이후 파리외방 수도회나 아일랜드의 골롬바노회, 독일의 베네딕토회 등을 통해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에 많은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면서 한국인 신부님들의 숫자도 차츰 늘어갔습니다. 사실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물적으로 성장된 것은 230년 역사 중에 30여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교황님도 3번이나 오시고, 경제개발을 통해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뤄냈습니다만, 저는 10여 년 본당생활을 관찰하면서 ‘그럼 내가 본당에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질적(質的)성장’ 입니다. 수도회를 통해 제대로 시작된 한국교회이지만, 아무래도 수도회와 평신도간의 틈은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자면, 수도회에서 평신도들에게 더 나은 삶을 인도하고자 재속회를 통해 좋은 삶으로 인도하지만, 평신도들은 수도자가 아니기에 세상에서 복음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배워도 어려워합니다. 마치 서로가 갖고 있는 케이블 장치가 달라서 변환이 힘들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교구가 잘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직도 양적인 성장에 치중하는 경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당의 몸집은 크지만 교우들의 신앙생활의 전반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모습을 보는데요.
오늘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에게 따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질적으로 성장되려면, 일단 독서의 말씀처럼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처럼 예전 것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공부하는 사람은 티가 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린 수험생도 아니기에 신앙심이 좋은 지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잘 들여다 볼 때, 우린 그 다음의 길이 열립니다. 복음 마지막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안 보이는 곳, 티 안 나는 곳을 들여다 볼 때, 우리 상태의 현 시점에서 가야할 곳이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