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간 화요일. 에제키엘 28,1-10; 마태 19,23-30
예전 제가 아는 분이 대장암 초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길래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며칠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수술 후 만날 수 있는 합병증이 ‘혈전’ 이랍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셨겠지요? 혈관 속에 피가 굳어진 것이 돌다가 혈관을 막으면 위험해지는데요. 그래서 ‘압박슬리브’ 라는 기계를 통하여 팔다리를 감아서 압박을 준 다음, 혈류가 멈추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를 달고 있었습니다. 이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편안하게 누워만있으면 모두가 좋아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오히려 위험해지는 현상’ 이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우들에게 요사이 제일 위험한 유혹이 ‘편안함’입니다. 사실 세상이 워낙 험하고 바쁜 것을 요구하기에, 오히려 성당에서만이라도, 신앙에서만이라도, 편안하기를 바란다는것을 제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되면 우리가 바라는 방향과 달리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데요.
오늘 독서에서 티로의 군주는 이런 말을 듣습니다. “과연 너는 다니엘보다 더 지혜로워, 어떤 비밀도 너에게는 심오하지 않다. 너는 지혜와 슬기로 재산을 모으고 그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 똑똑한 머리로 잘 살다보니 고맙게도 부유함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것을 잃고 싶어하지 않지요.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너는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하느님도 대단치 않게 여기며 이를 유지하다가, “가장 잔혹한 민족들을 너에게 끌어들이리니~” 라는 말씀을 통해, 다 잃어버릴 것이란 말씀을 듣습니다. 하지만 이 상실은 오히려 나라를 살리는 약이 되지요.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성직자나 수도자는 살면서 하느님 앞에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서약을 합니다. 하지만 버린다고 그냥 그것으로 끝나게 놔두시는 분이 아님을 발견합니다. 제가 아무리 가난하려고 하여도, 이미 우리가 아는 가난한 사람처럼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먼저 버렸기 때문에 채워주시는 신비를 만나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혈전의 예처럼, 편안한 상태는 우리를 오히려 살리기보다 어렵게 만든다는 현상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가 노래했던 복음 환호송을 소개하며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 달갑지만은 않은 그 가난 속에서 참다움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