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예레 26,1-9; 마태 13,54-58
며칠 전 선거가 있었습니다만, 결과에 따른 희비의 현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삶의 가치를 알게 된다.’ 는 점을요. 하지만 우리의 신앙인의 삶은 이와 반대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을 비롯하여 많은 성인, 성녀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순교하고 죽은 결과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다시 말해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에 편승했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이 신앙을 시작했으니까요. 만약 여러분 중에서 천주교 조직의 거대함에 매력을 느끼셔서 이 신앙을 지속시키고 있다면, 이 신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거대한 조직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막 신부가 되었을 무렵 신자는 아닌, 지금은 돌아가신 제 큰아버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곽 신부님 성당에는 신자가 몇 명이나 되나요?’ 그 때는 출신본당에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예 한 5천 명 가량 됩니다.’ 그러자 이렇게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아이구~ 성공했구만’ 그 분은 제가 성당의 CEO 정도 되는 줄 아셨던 모양입니다. 거대한 시스템에 환호를 보이시니까요. 이제 저는 만 2천명이 넘는 신자가 있다는 본당에서 지내지만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나마 열심히 주일미사에 나오는 교우들은 전체 신자 중에 1/4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만 2천이라는 숫자는 실상은 허수(虛數)입니다. 우린 거대 본당이라는 숫자에 대해 착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오늘 독서에 나온 그 당시 사제들과 예언자들은 허수에 해당되는 부류였을 것입니다. 예레미아의 예언에 대해 그들은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어찌하여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집이 실로처럼 되고 이 도성에는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가 되리라고 예언하였느냐?” 라고 따지기 때문입니다. ‘실로’ 라는 곳은 사무엘 상권 4장에 나오는 지역으로, 사무엘의 스승인 엘리가 살았던 곳입니다. 엘리는 자식교육을 망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벌로 블레셋 군대가 엘리 집안에 들이닥쳐 하느님의 계약의 궤를 빼앗기고 자신도 목이 부러지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기에 ‘실로’라는 지역은 그들에게 있어 하느님의 궤를 빼앗긴 치욕의 단어인 셈입니다. 고향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에 대한 반응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히려 그 분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자기들은 지금까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기에 기적도 베푸시지 않는데요.
리구오리 주교님은 구속주회에 계시면서 두 파로 갈라진 수도원을 통합하려다가 좋은 결론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실패한 분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분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도 이 분에 대해 교회는 기억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현세의 요구에 편승하시렵니까? 아니면 더 큰 것을 준비하고 바라시겠습니까? 좋은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