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월요일.

2014. 7. 7. 오전 1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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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4주간 월요일. 호세아 2,16-22; 마태 9,18-26

  우린 부자 청년의 비유를 압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되겠습니까?" 자신만만해 보입니다. 물론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신 주님은 유심히 쳐다보시다가 한 마디 건네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제가 오늘 복음도 아닌 말씀을 왜 꺼내들었을까요? 여기에 우리의 한계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부자청년의 비극은, 이 말씀을 듣고 그냥 돌아섰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계명은 지킬 수 있지만, 그 다음 단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차원이 있는 지도 몰랐기에 거기서 멈춰버립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회당장은 달랐습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여기는 보통 사람과 달리, 그는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저 애달픈 아버지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요?

사람이 재능으로, 능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서 알아갑니다. 젊을 때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다 되는 줄 압니다. 게다가 힘도 있으니까, 밀어붙이면 되는 것도 만납니다. 무서울 게 없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깨닫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요자기가 미처 생각지 못한, 깨닫지 못한 현장을 보면서 우린 이런 것을 만나야 합니다. 바로 차원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독서에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너를 영원한 아내로 삼으리라.”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던히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우상숭배를 했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왜 이런 미련한 사랑을 하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보통 사람 같으면 이미 정리했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한 복음 13장 최후의 만찬 때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포기하면 제일 빠릅니다. 하지만 만나야 할 것을 만나지 못할 우려도 생깁니다. 우린 그런 사랑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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