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목요일

2014. 5. 28. 오후 11: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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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6주간 목요일. 사도 18,1-8;요한 16,16-20

  본당마다 신부님들의 인사이동을 할 때마다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떠나시는 신부님을 보면서 눈을 붉히십니다. 뭐 이건 있을 수 있는 당연한 행동이지요. 그동안 정들었던 추억과 기억에서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며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두 번째 사항입니다. 그렇게도 눈물을 보이며 신부님에 대한 아쉬움에 손수건을 흔들며 배웅을 했건만, 바로 1시간도 안 되서 새로운 신부님을 보자, 언제 내가 울었냐는 듯이 기쁨의 박수를 보내던데요. 그걸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된다는데...’ 하지만 좀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 모양새가 조울증 증세처럼 울다가 바로 웃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요. 그래야만 교우들이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는데요.

오늘 말씀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독서에서는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바오로가 나오고 있고요. 복음에서는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는 말씀처럼, 떠나는 신부님을 바라보며 심난해 했지만 새로이 오시는 신부님을 맞이하여 기쁨의 체험을 합니다. 이 광경을 안 믿는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하게 보더라도 그래야 서로가 살 수 있음을 봅니다.

  오늘 말씀하시려는 떠남과 파견의 모습이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계속 새로운 곳을 떠다니며, 새로운 사람과 만나야만 하는 삶은 참 힘든 일입니다. 항상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곳이 늘 편안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만 접근하면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늘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반응에 당연히 바오로는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마찬가지로 교우분들도 늘 새로운 신부님, 수녀님과 함께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나지만, 서로 안에 존재하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때, 우린 늘 반갑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매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헤어짐과 새로움으로 채워주시는 반복의 시간은 우리 같은 신앙인들에게 참으로 설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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