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사도 4,13-21; 마르 16,9-15
혹시 이런 말씀 들어보셨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고요. 물론 사람이 나이가 들게되면 당연히 주름살이 생기겠지요. 여기서 의미하는 말은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기’에 갇혀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롭게 볼 줄 안다는 뜻입니다. 마치 보석을 계속 닦으면 반짝거리며 윤이 나고 광(光)이 나듯이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모인 교회라는 곳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제도나 시스템을 통해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메여있으면 답답한 곳이 되지요. 그래서 교회도 현대화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반응을 보인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구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시각의 시대에, 레오 13세 교황님은 1891년 5월15일, <새로운 사태>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사회교리 회칙을 발표합니다. 당시 시대는 산업혁명 이후, 사람이 사람처럼 살지 못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이미 어린이들도 노동현장에 투입되고 있었고, 노동시간도 1847년 원칙적으로 1일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하는 ‘10시간 법안’ 이 의회를 통과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회교리의 반포를 시작으로, 감히 사람들이 현재 제도에 대한 개혁을 시도하지 못하는 시점에, 교회는 사회에 속하면서도 어떠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이른바 하느님의 시각에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 것이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 속에서 이른바 ‘갇혀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네 나라를 이끄는 어떤 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사회의 리더격인 율법학자들은 창조적이면서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라고 말합니다. 이미 표징을 통해 주님의 사업이 드러났는데도 그저 덮고 숨기기에만 급급합니다. 복음에서도 제자들을 만난 예수님은 열한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사실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벌어지는 현장을 보면서 여러 감정이 드셨을 것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이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분들이라면, 불평보다는 비판을 하셔야 합니다. 불평은 그냥 투정에 불과하지만, 비판은 앞날에 대한 더 나은 전망까지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시각은 늘 새로움을 줍니다. 말씀과 성체를 통해 샘솟는 그 샘은, 우리를 답보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여러 각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지금의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제시하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