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해
앞서 우린 성지가지 축성을 하면서 주님을 향해 기쁨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높은 곳에 호산나” 라고요.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 놓으며, 극존칭의 예우로 그분을 모셨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호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의 마음은 급속도로 달라져 버립니다. 자기들이 바라는 구원방식으로 예수님이 따라오시지 않자, 그들은 주님을 팔아버립니다. 제자들마저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이야기하며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 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짐도 해보지만 결국 하나같이 도망가 버립니다. 이 길을 가야하는 예수님도 번민에 휩싸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나가게 해주십시오.” 여기서 빌라도는 주님을 풀어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라고까지 묻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빌라도는 대단히 착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란, 평상시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그야말로 성인군자입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쳐오면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오지요. 빌라도는 로마에서 이스라엘로 파견된 총독입니다. 그는 로마라는 중앙무대에로 가서 다시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재 자신은 이스라엘이라는 촌구석에 와 있습니다. 어떻게든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 점수를 따야만, 로마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라는 뜻하지 않는 복병을 만납니다. 조금 심문해보니 죄는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풀어주려고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된다면서 폭동을 일으킵니다. 자~ 일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여러분은 어떤 해결책을 내놓으시겠습니까? 복음처럼 예수님을 못 박는 것이 제일 쉬운 해결방법이지요. 그러면서 손을 씻지요.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이 없소.”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진실을 바라볼 줄 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을 버립니다. 예전에 저는 이런 사람들이 참 싫었습니다. 비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것이 보입니다. 사람의 한계와 약점을요.
박노해 시인의 약점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 약점, 약점은 약이 되는 점/ 남들은 모자란 지점이라고 / 낙인 찍은 점이지만 / 모자란 만큼 보살피고 길러서 나중에 귀하게 쓰라고 남겨둔 점 / 약점이 있기에 / 그대가 와서 나를 채워주고 / 내가 그대를 채워줄줄 아는 / 우리 상처 난 영혼에 / 겸허히 비워두신 점, 약점 / 그동안 우린 계획도 세웠고 노력도 해봤지만 잘 안됐습니다. 보통 사람은 이런 자기를 미워하지만, 우린 자신의 무능을 인정할 때, 실망이 아닌 참된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면서 ‘하느님이 아니시면 안되는구나~’ 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는 참되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